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절박함으로
글쓴이/ 봉민근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세라고들 한다.
그러나 말세의 때에 대한 준비나 다급함을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믿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말세를 준비해야 한다.
노아의 때처럼 방주가 문이 닫히기 전에 세상을 향한 복음을 안타깝게 전하려는 모습들이 보이 지를 않는다.
코로나 탓을 하며 자기 합리화에 빠져 버린 믿는 사람들은 느긋하다 못해 생명 구원에 관해 관심조차 없는 이들이 많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생명수다.
버려두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 뻔하게 보이는데도 복음을 외치지 않는다.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말씀은 너무나 좋은데 생명을 살리기 위한 다급한 말씀이 결여되어 있다.
주님이 배신자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그를 살리신 까닭은 복음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심이었다.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후에 주님과 얼굴이 마주쳤다.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은 어떤 눈이었을까?
책망하는 눈도 미워하는 눈도 아니요 오직 내가 너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사랑 어린 눈이었을 것이다.
그 눈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도 세상으로 나아가 나의 사랑을 전하라 하신 분부였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심판이 있음을 전해야 한다.
왜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가?
저들을 사랑하며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라는 주님의 분부가 그 속에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에서 누가 큰 자냐 싸움만 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알고 낮은 자리에서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 앞에서 가장 인정받는 자가 될 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피다.
그 피를 수혈받지 못하면 죽음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피로 우리를 살리시려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놓으셨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코 회복할 수가 없다.
말세의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외쳐야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절박함으로 이 시대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명으로 다가오는 자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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