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특강

영적 침체와 회복[마26:69-75]

새벽지기1 2021. 9. 6. 07:34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75]

 

교회절기로 고난 주간을 지내면서 묵상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하여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단계별로 발전합니다.

 

1단계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70]

2단계 맹세하고 부인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3단계 저주하면 맹세하며 가로되 나는 알지못한다[74]

 

이 모습을 보면 결코 남의 모습 같지가 않습니다.

언제든지 처절한 영적인 침체 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던 베드로가 가장 가까운데서 예수님을 저주하는 모습은 저말로 통곡스러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한 한계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죄의 단계는 늘 이렇게 진행합니다.

처음부터 잔인하지 않습니다.

서서히 저주의 길로 가고 결국 저주의 늪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이러한 죄의 물결 속에 휘말리고 고사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어렵고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만 하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우리의 모습은 베드로의 모습을 쏙 빼닮은 것과 같습니다.

좋을때는 간과 쓸개까지 다 빼어 줄 것 같으면서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가치 없이 던져 버리는 인간들의 모습에서도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근 거리에서 보시고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지시고 용서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있어서 다행인 것은 그가 회복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을 한 유다와는 분명히 다른 점입니다.

베드로의 회복은 우리에게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회개의 처절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고 말씀앞에 회개하지 않고 자괴감으로 인하여 자살을 하였습니다.

 

회복은 말씀이 생각날때 이루어 집니다.

말씀이 살아있고 기억 될 때 회복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배산의 절정에서 말씀을 생각하였고 말씀앞에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이 통곡으로 베드로는 다시금 주의 긍휼하심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영적 침체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