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로마서 묵상(8)

새벽지기1 2021. 7. 21. 05:15

로마서 2 : 4

친절함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가운데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여기에는 우리를 몹시 괴롭힌다든지 혹독하게 하는 무엇이 전혀 없다는 측면에서 친절함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은 누가복음 5:39에서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 사이의 차이를 언급하실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묵은 것이 좋다 함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푹 익은 것이 몹시 부드럽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친절함은 회개하는 여인을 용납하심에서도 나타납니다(눅 7:36-50). "죄인들에게 주님은 얼마나 친절하신지요!" 바로 이것이 친절하다는 말의 참된 뜻입니다. 특히 아무 공로 없는 자들에게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구약에서 특히 한곳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노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8-10).


이사야 54장 전체는 영광스러운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이 곧 복음의 좋은 소식입니다. 친절함 또는 인자함은 언약적인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백성들에게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말씀의 기초가 주님의 인자하심에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 29:11) 고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 안에 어떤 공로나 의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주님 안에 있는 주님의 인자하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친절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신 인자하심입니다. 주님이 주신 책을 지워버린 자들에게 주신 인자하심입니다. 간청할 자격도 없고 기득권을 내세울 수도 없는 죄인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친절하심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움이며 영광입니다.

롬2:5 - 16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심판의 4가지 원리차원에서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진리를 따라서 심판하십니다(2절). 둘째는 행위를 따라서 심판하십니다(6절). 셋째는 편견 없이 심판하십니다(11절). 넷째는 복음을 따라 심판하십니다(16절). 이 원리들은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본 말씀 묵상을 통해서 심도 있게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먼저 4절에 있는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이 말씀은 특권을 지닌 유대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도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바울이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 및 용납하심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괜찮다는 유대인들의 생각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회개케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바울 사도의 사역과 전파하는 메시지의 핵심적인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은혜와 복음 진리의 강렬한 빛을 던져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잠잠하심이 우리가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다른 분이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조상이 아브라함일지라도 몇 대째 신앙 생활하는 자들일지라도 우리들의 행한 죄악을 따라 우리들의 목전에서 차례대로 갚으실 것입니다(시 50:17-21).

로마서 2 :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원칙들에 대하여 세밀하게 살펴보기 전에 본문 4절 말씀에 대하여 좀더 상고하고자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오래 참음과 인자하심이 유대인들의 추측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의 적용도 그들에게 먼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매우 폭넓은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들도 유대인들과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특별한 계시를 받은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유대인들에 관하여 언급할 때 사용된 단어는 '포르티오리'라는 말입니다. 즉 특권을 지닌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특권들이 오늘날 복음 안에서 우리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가져다줍니다. 한편 이것은 전에 결코 들어본 적이 없고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의 조명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대인들처럼 복음을 들었고 그 들은 것에 대하여 약간의 주의를 기울인적이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요 경고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주는 하나의 빛입니다. 반응하게 하는 빛이요, 따르게 하는 빛이요, 순종하게 하는 빛이며 영생에 이르게 하는 빛이 될 것입니다.


'인자하심' 또는 '선하심'이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매우 특별한 단어입니다. 다양한 말로 번역되는데 에베소서 2:7에서는 선함으로 또는 친절함으로 번역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친절하심'(우리 말 성경은 '자비하심'으로 번역되어 있음). 이것은 마치 사랑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고 친절함으로 일깨우는 인자하신 주님을 엿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내일 좀더 상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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