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신앙 없는 것, 가장 불행한 기적” / 김영규 목사(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력목사)

새벽지기1 2021. 1. 31. 07:59

2005년 11월 11일

 

시간을 종종 숨겨진 공간적 차원들과 다른 차원으로 생각한다. 그런 공간이나 시간처럼 우주 안에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찰하는 인자도 그런 시간이란 차원과 분리될 수 없이 구별된 하나의 차원으로 고려되고 있다. 우주 안에 어디로 가든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도록 우주차원이 창조되어졌다는 것은 에너지나 힘이란 개념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차원 개념 인식 높아져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그런 개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잘 증명이 되었다. 공간들의 차원들이 수학적 차원들에 대한 개념(소위 플라톤-데카르트주의)이 아닌 입자물리학의 차원들로 대체할 때조차도, 운동과 분리할 수 없는 그 시간을 공간의 차원들에 한 차원으로 흔히 첨가하고 거기에 관찰하는 자가 볼 수 있는 차원을 우리가 더 첨가할 때, 이런 마지막 첨가하는 차원을 실제로 우주 안에 모든 점에 타당하도록 첨가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래서 우주배경 복사 안에서 그런 차원이 정보로서 포함할 때도 그런 차원이 우주의 혼돈의 근원인 임의성으로 첨가될 때, 현 자연은 피조물들이 우주의 어느 곳으로 이동해도 볼 수 있도록 극미시세계와 극거시세계의 경계선들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평형이 그 조건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에서 밖을 향하여 관찰하고 볼 수 있는 우주의 차원은 과연 진정 누가 볼 수 있도록 창조되었는가를 물었을 때, 그런 첨가된 차원들은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조물들이 안식하는 형식으로 항상 움직이는 모든 감각의 지향점들이 멈추는 영역인 자연은 그 피조물들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차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우주는 다른 생명체들이 볼 수 있는 차원으로 만들어 진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볼 수 있고 다스리시는 차원으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우주 차원

 

2005년 노벨물리학상은 오류가 없는 절대적 1 미터가 1 초안에 직선을 상징하는 빛의 정확한 속도(299,792,458 미터)로 배분된 것 중 하나로 표준화할 수 있는데 기여한 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 1 미터를 실제로 얼마나 작게 쪼개어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나 1초를 얼마나 작는 단위로 쪼개어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아토 미터, 아토 초)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오랫동안 비판해 온대로 절대적으로 정밀한 길이나 시간도 의식의 지향점에 의한 대상을 분할하는 경향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까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데 가장 크게 방해해온 점이나 선, 수와 같은 개념들처럼 공간이나 시간의 개념을 표상할 때 우리가 의식의 지향성 자체의 오류와 판명성 오류와 같은 근본적 인간인자들에 얼마나 깊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그 노벨물리학상이 대표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어떤 이론도 이론을 표상하고 산출하는 자를 그 이론에 포함시킬 수 없듯이, 시간이나 공간을 물질이나 물질의 운동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자연에 있는 시간이나 공간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있는 개념이나 표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물질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시·공간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표상에 있어서 아무리 빛이나 빛의 파장처럼 규칙적인 운동이 그것을 대신한다고 해도 낮과 밤과 같은 주기와 같은 자연 자체 안에 있는 다른 규칙적인 운동과 특별히 구별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물론 여기에서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가 상을 잘못 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오류들을 인간이 얼마나 피할 수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극한개념들은 아직도 그렇게 너무 인간적이다. 인간의 호기심은 과학의 창조적 힘이지만, 그 호기심이 멈추어야 할 곳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가 계시하신 그 일상용어들을 믿는 것은 그 호기심이 멈추는 곳에서 믿는 것이다. 신앙은 우주의 기원처럼 기적이다. 믿을 수 없는 것도 불행한 기적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스스로 그 기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적의 세계가 없다고 믿어야 하는 대로, 진정한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약간의 바보가 되어야 한다.

 

우주의 기원처럼 기적 같은 신앙

 

텍사스 대학의 이론 물리학자였던 John A. Wheeler의 말대로 현대물리학자의 위기는 어떤 물음을 물어야 될지 모르는데 있다. 남을 교묘하게 속이는 큰 범죄자처럼, 자신의 무지를 과장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인류들이 가는 행보들은 무조건 앞으로 가야하는 바보들의 행진이다. 신자들이 그런 바보들 중에 약간 더 나은 것은 창조자 하나님이라도 믿고 가는 바보들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런 바보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