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30일
남아공에서 아파테이트가 종식되고 흑인정부가 수립된 후 과거사 청산이 문제되었었다. 백인들의 잔학한 손에 고문당하고 죽어간 수많은 순국자들의 피가 원성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Peace and Reconciliation Committe(평화와 화해 위원)였다. 이 위원회에(어느 기간까지) 자진 신고하여 자기 범죄를 솔직히 고백하는 자는 용서를 받거니와 자진신고하지 않고 숨어 있다가 고발되면 가차없이 처벌받게 되어 있다. 현명한 해결책이라고 생각된다.
덮어놓은 문화
우리는 덮어놓기를 잘한다. 믿어도 덮어놓고(성경을?) 믿고 사건이 터지면 뚜껑 덮기에 바쁘고 누가 앞에 걸리면 쉬~쉬~하는 분위기다. 고 한경직 목사는 템플튼 상을 받기 전에 일제 하에서 신사참배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고 한다. 과거를 잘 처리 안 하면 현재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말이 유행되던 때가 있었다. 요새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 받으세요”가 유행이다. 내적 치유 상담가가 부쩍 늘었다. 과거를 들먹거리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 없이 나아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고통은 악이다. 고통은 삶의 일부이다. 고통은 원래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고통은 죄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을 은혜로 바꾸셨다. 아픔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아픔을 통해서 치유하신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야 썩은 것을 수술할 수 있다.
새 시대를 여는 그리스도인
바울 사도는 마음이 새롭게 변화된 그리스도인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평가하며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한다(롬 12:1-3). 이와 관련해 존 R. W. 스토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세상의 기준과 구별되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성품과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의 영역에서 살고 있다. 동시에 오직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영역에 속한 존재이다. 바울 사도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곧 그리
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그 몸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는 새로운 존재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추구하는 모든 삶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성격이다.
“고통은 변장된 복이다”라고 한 C. S.루이스의 말이 생각난다. 크리스마스가 즐겁고 새해가 뜻 깊은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낡은 것은 가라. 새것이 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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