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6일
우리 학교에 가까이 있는 용미리 공동 묘지 가는 길에 고양동 삼거리라는 곳이 있다(실제로는 사거리다). 이 사거리야말로 럭비시합을 방불케 한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차들이 머리를 들이밀며 쳐들어간다. 좋아하는 소올(장애인이 음식을 나르는 식당)에 갈 때마다 통과해야하는 전장이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전사자를 본 적이 없다. 기적이다.
그런데 이 사거리를 빠져나가는 데는 전략이 필요하다.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적진으로 돌진하는 병사의 장엄함이 엿 보인다. 나도 옆에서 덩달아 오른발에 힘을 주고 손잡이를 꽉 잡는다. 사거리에 도달하면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우선권을 알려주는 신호등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끼여들 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전진!’이라는 명령에 따라 차머리를 들
이민다. 누가 땅을 1센치라도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틈을 뚫고 들어간다. 왼쪽에서 공격해 오던 전사는 아뿔사 억울하게 양보 아닌 양보를 한다. 드디어 우리는 승리의 깃발을 흔들며 적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고지를 향해 전진한다. 택시 기사의 말이 생각난다. “이렇게 안 하면 가질 못 합니다!”
신호등을 대신하는 로터리
‘로터리’는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말이다. 피해서 돌아 가야 하는, 길 가운데 놓여 있는 섬이다. 영국에서는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이라고 하는데 ‘빙-돌아서 간다’는 뜻이다. 라운드어바웃은 신호등을 대신하고도 남는 그야말로 눈치문화의 극치요 양보문화의 본보기다. 영국의 크고 작은 사거리 한가운데에는 이 라운드어바웃이 도사리고 있다. 신호등 앞에서는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것이지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도 없다. 그런데 라운드어바웃에 다가서면 묘한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아름다운 눈치
영국에서는 좌측통행이기 때문에 사거리에 도착하면 라운드어바웃의 왼쪽을 끼고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라운드어바웃 원형 길 안에 진입하기 전에 정지선에서 일단 정지한 후 좌우를 먼저 살피고 전진한다. 만일 우측에서 이미 원형 길 안에 들어서서 오고 있는 차가 보이면 나는 그 차가 내 앞으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사방에서 라운드어바웃을 향해 오는 차가 모두 우측에서 오는 차에게 양보하기만 하면 신호등이 없어도 교통정리가 저절로 되게 마련이다. 이것은 우측(한국에서는 좌측이 되겠다)에서 오고 있는 차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기본적인 규칙 위에 남을 생각하는 눈치와 기다림의 양보정신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시민정신이라 하겠다.
고양동 사거리 한 가운데 그리고 교회 안에 라운드어바웃을 상상해 본다. 그래서 우리들이 더 이상 목숨을 내걸고 돌격하는 대신 이웃을 살피며 여유 있게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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