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6일
‘고양이족이냐 싱글족이냐’ 젊은층 사이에 새로운 종족이 나타났습니다. 요즘 화제만발인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를 계기로 혼전동거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로 후덥지근합니다. 드라마에는 항상 안티세력이 등장해서 ‘인어아가씨’도 ‘올인’도 뭇매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러나 당초 여론의 비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던 ‘옥탑방 고양이’는 예상외로 쉽게 용인되었다고 합니다. 혼전동거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는 여론에 그치질 않고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한 정당대표는 100% 찬성을 외치기도 했으며, 그동안 동거를 숨겨오다가 당당하게 밝히는 커플도 늘고, 회원수가 30만 명에 이르는 인터넷 동거사이트도 유행하기도 한답니다. 마치 지루한 장마가 거치고 본격적인 피서철이 돌아온 것처럼 전통적인 가족제도 안에서 오랫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동거가 음지에서 양지로 급부상하고 있나봅니다.
그렇다면 동거에 대한 찬성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자의 상황적 배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살아봐야 상대방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동거단계에서 끝내는 것이 이혼율도 줄일 수 있다’. ‘연애 3년보다 3개월 동거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정확한 판단 아래 앞으로의 부부사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혼전동거에 대한 찬성의 배경에는 ‘우린 살아보고 결혼한다. 그래서 이혼의 아픔을 줄인다’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동거를 예찬하는 젊은 세대 앞에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70%이상이 찬성, 80만 쌍 정도가 실제 동거) 우리가 할말은 무엇일까요? 혹시 반대해서 꽉 막힌 보수니 꼴통이니 하는 욕이라도 먹는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아니면 자기책임아래 자기 삶을 선택한다는데 주제넘게 가타부타하지 말라는 비난도 들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삶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받기 싫어하는 시대일수록 성경적 규범과 윤리를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동거는 성도로서 옳은 문화가 아니라 봅니다. 옳지 않다는 말은 그저 ‘매우 모험적인 선택’이라고 지적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선택과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금령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거는 결혼 외의 육체적 결합이기 때문에 즉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벗어난 성의 오용인 간음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혼인이라는 제도입니다. 혼인이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일인데(창2:24,마19:6). 이것이 어느 때 일어 나는가하면 서로 아내와 남편으로 맞이하기로 서약하는 그 시간에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립이 단순히 개인 둘만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여러 증인 앞에서 서약하기 때문에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거는 이러한 사회적 증인, 혹은 법적 절차 이전의 남녀의 결합이기 때문에 혼인이전의 일에 속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정
상적인 부부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또 한가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는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결혼의 우선되는 목적은 개인의 즐거움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부라는 한 사회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나타내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신성하고 중요하기에 성경은 혼인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의 상징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의 법은 이 땅위에서만 즉 물리적 육체적 사회적인 관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적인 나라에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혼전동거는 단순히 인륜 도덕적인 윤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경륜의 진행을 가로막는 신적 윤리에 대한 불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정당한 부부의 도리를 벗어난 육체적 결합은 내 인생을 내가 경영하겠다는(창11장) 바벨탑문화일 수 있으며 개인적 책임, 사회적 책임 너머 하나님나라의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험이 없다’ 에서 ‘임신경험이 없다’는 말로 바뀐 소위 성적혁명 시대에 유행의 흐름에 앞도 뒤도 볼 것 없이 따라가서는 안되고 지고지순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하에서 옥탑까지 위로 아래로 묵시가 없이 방자가 충만한 이 땅위에서(잠29:18),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삿21:25) 시대 앞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경영에 힘을 다하여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진정한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라지만 이런저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거하는 커플에게도, 결혼의 실패로 고통을 겪는 자들에게도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는 결코 제한적이지 않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할 것입니다(요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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