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E-대회, 에클레시아드 / 이은상 목사(수원노회)

새벽지기1 2020. 11. 18. 05:08

 

2003년 9월 8일

 

우여곡절 끝에 참가한 북한을 비롯해 세계 174개국 열방의 젊은이들이 열기를 쏟아냈던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꿈과 젊음, 여기에다 미모의 축제까지 마치 기록대회가 아닌 감각대회처럼, 그럼에도 이 대회가 남긴 것은 늘 스포츠가 그렇듯이 ‘스포츠는 짧고 여운은 길다’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경기에는 승자는 승자로서의 영광의 순간이 패자는 패자로서의 실패의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기 후에 우리의 시선은 좌절하고 있는 패자들에게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대항이든 동네대항이든 스포츠세계에서 승자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패자에게는 좋지 못한 앙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달음질하는 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달음질해야 하고 또한 상 얻는 자는 하나인 것을 서로 인정해서(고전10:24) 패자는 자신의 패배를 깨끗하게 받아들이고 승자에게 진정한 박수갈채를 보내야 마땅합니다.

 

사람은 앞서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 지배받기 때문에 지게되면 속상한 법이며 차이나 석차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 수련회 때 조별대항에서 게임의 법칙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시험에 드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여러 가지 패배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는 패자들의 응어리를 생각하면서 ‘E-대회, 에클레시아드'(교회끼리 화목을 위하여 치르는 스포츠?)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자가 속한 교회는 이웃교회들과 여러 번에 걸쳐 친선축구경기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전적은 전패입니다. 그것도 경기마다 큰 점수 차로 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경기에 패하고도 성도들은 속이 상하거나 배가 아프든지, 아니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축구시합을 하지 말자’는 등 부정적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추적해보니 다름 아닌 패자의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패자의 영광이란 경기에 지고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어떻게 경기에 지고도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E-대회만이 가지는 독특함입니다.


E-대회는 세상의 경기와는 달리 그야말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고자하는 경기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회가 아니라 교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속한 교회는 게임보다는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심지어 스스로 ‘기쁨조 혹은 위문단’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패함으로 상대방에게 승리의 기쁨을 얻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경기에 임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패자가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인 자기합리화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패배에 익숙한 자의 변명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해주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나라와 다름(구별됨)이 그 특징입니다. 그 특징 중의 하나는 환란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며(롬5:3),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머리가 아닌 꼬리가 될 줄도 아는 것입니다. 스포츠, 교육, 물질, 은사 등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실력 차이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정적 찬스에 개발(헛발)을 한 선수를 보고도 열 받지 않고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인지 현대교회에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고 못사는 세상처럼 교회도 모두가 다 이기려하고 일등만 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각 교파별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한국교회는 보이지 않는 성도수의 경쟁, 과업의 경쟁, 확장의 경쟁, 이름에서도 뒤질세라 ‘제일, 중앙,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야 합니다. 물질이 많아서 감사하고 일등해서 기뻐하고 잘생겨서 즐거워하는, 남보다 나를 낫게 여기는 희락은 세상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교회의 특징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쥐꼬리만한 월급봉투를 받고도 감사할 줄 알고, SKY대학 근처에 얼씬못해도 기뻐하며, 인생의 성적표마다 늘 내 뒤에 누군가 아무도 없어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자와 꼴찌들이 합창할 수 있는 나라, 지렁이같이 못난 인생들이 뒤뚱거리며 춤을 추는 나라, 도무지 세상이 흉내낼 수 없는 성령께서 만들어 주시는 신비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미녀가 아니더라도 응원단이 될 수 있고, 성도수가 작아도 주의 종이 되며, 그저 꾸무럭거리는 변두리 성도들이 모여서 손뼉칠 수 있는 E-대회가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열방 가운데서 날마다 열리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