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식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옮겨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장애물을 제하여 버리시고 끝까지 당신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들을 파죽지세로 물리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었고, 또한 자기 자신들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모리 땅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모리 땅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원에 진을 쳤는데 그곳은 요단 강의 여리고 건너편 지역이었습니다.”‘또 길을 떠나’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아모리와의 대전투에서 놀라운 승리를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가나안 땅이지 아모리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꿈의 사람은 결코 중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신앙의 위험이 찾아올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이만하면 됐다. 여기서 머무르자’라고 생각할 때 위험이 찾아오게 됩니다.
꿈을 향한 인생의 장애물
‘또 길을 떠나는’ 모습은 멋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꿈과 소망을 가지고 길을 떠날 때 장애물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점잖게 앉아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은 언제나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도움도 사람을 통해 오지만 사탄이 주는 가장 큰 시험과 방해도 사람을 통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락과 발람이라는 아주 못된 사람을 만납니다. 발락은 모압의 왕이고 발람은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모압의 왕과 거짓 선지자가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것을 막아섭니다.
이들은 어떻게 방해를 했습니까. 2~3절입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한 모든 일을 보았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많아 두려웠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두려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겁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모압 왕과 싸울 마음이 없었습니다. 신명기 2장 9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겁을 집어 먹은 모압 왕은 전쟁을 결정해 버립니다. 싸울 것을 고민하던 발락은 미디안에 있는 장로들에게 사람을 보내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장로들은 주술가로 유명한 발람을 부르라고 가르쳐 줍니다.(4절)
하나님을 모르는 발락
발락이 있던 곳은 모압 땅에서 약 640킬로미터 떨어진 굉장히 먼 곳이었습니다. 발락은 그곳까지 사람을 보냅니다. 이 때 발락이 한 말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싸움에서 이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와서 주문을 걸어주면.” 이를 통해 발락의 두 번째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확률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 발락의 특징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의 계획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약속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5절에 보면 ‘한 민족’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이 거룩한 족속이고 복을 받을 민족이지만 발락은 이러한 하나님의 비전과 꿈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발락보다 더 어려운 사람은 발람입니다. 그는 상식만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비뚤어진 사람입니다. 8절입니다. “발람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오늘 밤 묵으시오. 그러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시는 응답을 드리겠소.’ 그리하여 모압의 지도자들이 그와 함께 머물렀습니다.”굉장히 멋있는 말 같습니다. 이 말만 읽으면 발람은 큐티도 잘하고 말씀도 잘하고 믿음도 좋은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이방 주술가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무당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께 물어보겠다는 말은 여러 신들 중에 하나인 하나님에게 물어보겠다는 종교다원주의적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발람에게 찾아가십니다.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보기도 싫은 발람을 찾아가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발람은 이 때 멈추어야 합니다. 발람은 발락이 보낸 지도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들과 가지 말라고 하셨다”면서 돌려보냅니다.(13~14절)
그러자 발락은 더 많은 물질과 더 높은 지도자를 보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줄테니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라고 다시 청합니다.(15~17절) 그 때 발람은 어떻게 합니까. 발람은 그 사람들을 재워줍니다. 이런 제의를 받을 때 딱 끊어야 하는데도 발람은 그 사람들을 재워줍니다. 빨리 보내야 하는데 발람의 마음 가운데는 은근히 돈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18~19절에서 발람은 “발락이 은과 금으로 가득 찬 자기 집을 내게 준다 해도 나는 내 여호와의 명령에 어긋나는 것은 크든 작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비뚤어진 발람 여기서 우리는 발람의 이중인격자적인 특징을 봅니다. 속으로는 물질을 원하면서 말은 멋있게 합니다. 멋있는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경건한 선택이 중요한 것입니다. 속을 훤히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은 베드로후서 2장 15~16절에서 발람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들은 유혹을 받아 바른 길을 떠나서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발람은 불의의 대가를 사랑하다가 자신의 범죄로 인해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말 못하는 당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해 이 예언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했습니다.”돈에 대한 욕심에 끌려가는 발람에서 하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20절) “이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왔으면 함께 가거라. 하지만 너는 내가 네게 말하는 것만 해야 한다” 식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발람은 저주를 하러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주하는 발람의 입을 막고 축복의 말을 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식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 곁에 계십니다. 발락과 발람의 공격을 하나님이 막아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24장 9~10절에서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한 고백을 보겠습니다. “그 후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과 싸울 태세를 갖추고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사람을 보내 너희를 저주하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발람의 말에 들은 체도 하지 않았더니 발람은 너희를 거듭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그 손에서 너희를 건져 냈다.”느헤미야 13장 2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고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잘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반기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을 매수해 그들을 저주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저주를 복으로 바꿔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발락처럼 그리고 발람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리고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오늘 당신 마음에 흘러넘치기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한 발짝씩 옮겨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장애물을 제하여 버리시고 끝까지 당신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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