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고라 일당의 반역

새벽지기1 2020. 1. 7. 06:52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인생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오직 한 길은 내 인생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확실한 인생관을 가지고 순간순간 그분에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한 역사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민수기 역시 그 역사관을 따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역사관은 무엇입니까. 바로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인생이 힘들고 뒤틀어지고 마음이 힘들어지는 원인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사람에게 그리고 위치와 지위 등에 목숨을 걸게 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인간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승리의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고라 일당이 반기를 드는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한 지 약 40년이 지난 때의 일입니다. 즉, 광야생활 말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들이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고라, 두 번째는 다단, 아비람, 온 그리고 그를 따르던 250명이 함께 모여 파당을 지었습니다. 공동체의 위기는 끼리끼리 모여 파당을 지을 때 옵니다. 고라는 모세와 사촌지간입니다.(출 6:14) 이들은 성막에서 봉사하고 성막에 필요한 물건들을 나르는 귀한 직분을 맡았던 사람들입니다. 르우벤은 누구입니까. 르우벤은 서모인 빌하와 통간하여 야곱의 저주를 받고 장자의 권리를 빼앗긴 사람입니다. 신기한 것은 레위 지파이면서도 제사장 아닌 신분으로 성막에서 봉사한 고라와 늘 기회만 오면 장자권을 찾으려는 르우벤 지파가 남쪽 지역에서 항상 같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정치적 목적 때문에 한 무리로 파당을 지어 반기를 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모세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도 참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한 가지입니다. 인생관을 바르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체크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인생관, 역사관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고 넓게 가져가는 것. 그것이 모세의 위치에 있을 때 위기를 탈출하는 법이요, 고라와 그 일당들의 잘못을 우리가 범하지 않는 비결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고라와 그 일당들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너무 지나치다! 회중은 하나같이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 그런데 왜 당신들이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를 높이느냐?” 그들은 사람에게 따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위치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이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인생의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교만한 생각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 어느 위치에 가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서운한 마음에 다 집어치우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모세는 이 위기를 아주 정확한 인생관에 기초해 대처했습니다.  4절입니다. “모세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분명한 인생관 


모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사람들과 한바탕 붙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한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즉, “인생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나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내 위치를 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시다”라는 분명한 인생관을 모세는 보였습니다. 5절부터 7절까지 모세는 ‘여호와께서’라는 표현을 다섯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모세는 고라에게 하나님께서 세운 자리이니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너희가 성막에서 봉사하고 제단을 섬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그러나 고라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올라갔으므로 자기들도 노력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9~10절) 그 옆에 있던 다단과 아비람도 모세가 백성들을 죽이려고 여기까지 인도한 것이라면서 결코 모세를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12~14절) 온통 모세만 바라보고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의 책임을 묻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모세는 다시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때에도 다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15절입니다.“모세는 몹시 화가 나서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그들의 제사를 받지 마십시오. 저는 그들에게서 나귀 하나 받은 것이 없고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세의 마음 한복판에 분명한 인생관, 역사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오직 한 길은 내 인생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확실한 인생관을 가지고 순간순간 그분에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마음이 힘드십니까. 자꾸만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깁니까. 그렇다면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깨져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했습니다.  모세는 내일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서 보자고 제안합니다.(16~17절)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나 죄를 지은 사람이 향을 담아 향로를 가져가면 불이 내려 즉시 타버렸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 역시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불을 드리다가 그 자리에서 타 죽은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내일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굉장히 길었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조급한 마음에 어떤 일을 꾀하게 되고, 그러다가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하시고 인생은 하나님께 있다는 확실한 인생관이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기도, 방법도 하나님이 정하시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여호아의 영광이 나타나심 저는 18~19절을 읽으면서 저는 손뼉을 쳤습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이 자기 향로를 가져다가 그 안에 불과 향을 넣고 모세와 아론과 함께 회막 입구에 섰습니다. 고라가 회막 입구에서 그들 반대쪽에 자기 무리를 모으자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습니다. 살아계셔서 행동하십니다. 뒷부분을 읽어보면 땅이 갈라져서 고라와 그 일당들이 다 죽게 됩니다. 그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소유물도 그 땅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무서운 역사입니다.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가담에서 250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여호수아가 묵상되었습니다. 그는 가나안 정탐 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보고를 해 인정을 받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최전방에 직접 나가 싸웠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세가 리더 할 때 40년 동안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여호수아가 마지막에 한 말 가운데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그의 분명한 인생관이 나와 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3절입니다. “그렇다면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없애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리라.”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승리가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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