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결단대로 역사가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결정대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히 여김을 받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멸시받을 것입니다. 사람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길을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모습인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평(27절)과 거부(31절), 잘못(33절), 실망(34절), 대적(35절)입니다.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 오늘 말씀에는 이런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결단이 기록되어 있고, 그 결단에 따른 하나님의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하나의 질문을 가지고 읽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입니다. 이를 살펴보는 것은 곧 나 자신과 이 민족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밝혀 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첫 번째, 하나님의 결단은 불평하는 대로 갚아주고 믿음의 고백대로 이루어주겠다는 것입니다. 26~27절을 읽어보면 백성들이 불평함으로 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평을 싫어하십니다. 불평은 삐뚤어지고 썩은 행동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결단이 28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너희에게 들은 그대로 너희에게 해 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불평했습니까. 14장 2~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말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소원은 우리가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의 고백대로 내가 갚아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잘 사용하셔야 합니다. 우리 역시 믿음의 말을 할 때 살아날 것입니다. 특히 상황이 어려울 때 아무 말이나 하지 마십시오. 그때일수록 꿈과 사랑, 선한 말을 하십시오. 그리하면 살아날 것입니다. 본문에서 20세 미만의 사람들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명기 1장 39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말한 그 어린아이들, 곧 아직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너희 자녀들은 그 땅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줄 것이니 그들이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아직 자녀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두 번째 중요한 소원 하나가 있습니다. 즉, 20세 이상 성인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서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실 때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거부했다고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들이 한눈팔지 않는 것입니다.(32~33절) 33절에 나오는 ‘잘못’의 히브리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간음’이라는 뜻입니다. 간음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한눈을 팔고 다른 대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눈팔면 방황하게 돼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영적 간음을 범하면 다음세대는 방황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영적 간음을 하게 되면 여러분의 자녀는 4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것을 동시에 사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계획을 더 사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결단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사람의 미움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네 번째,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입니다.(34절) 34절에 보면 백성들이 40년 동안 고생한 이유는 하나님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을 했습니다. 열매가 무성한 나무를 기대하고 갔는데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예수님이 실망해서 그 나무를 마르게 하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믿음의 말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불평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실망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없어서 혹은 능력이 없어서 실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의 무능력만을 바라봤기 때문에 하나님이 실망하신 것입니다.
다섯 번째,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대적한다는 것은 대든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다섯 가지 소원을 살펴보았는데, 이것을 종합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무엘상 2장 30절에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영원히 내 앞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내가 존중할 것이고 나를 멸시하는 사람들을 나도 멸시할 것이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예배를 존중히 여기고,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불평하고 거부하고 한눈팔고 실망시키고 대적하는 사람은 광야에서 쓰러지게 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고 두 눈으로 하나님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들지 않고 좋은 것을 거부하지 않고 어떤 것이라도 감사함으로 받는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주겠다.” 이것이 인생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헌금을 하더라도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께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나올 때도 늦지 않고 나오는 것입니다. 한 번 늦는 것은 실수지만 계속 늦는 것은 게으름입니다. 일찍 와서 기도하는 것, 찬양할 때 딴 짓하지 않는 것, 모두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 가지 결단을 합시다. “나는 하나님을 최고로 알겠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결단대로 행동하셨습니다. 존중히 여기는 자를 살려주셨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죽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36절과 37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께서 결단대로 행하셨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결단대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결단대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결단대로 역사가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결정대로 이 땅에 종말이 옵니다. 하나님의 결정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죽습니다. 하나님의 결정대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히 여김을 받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멸시받을 것입니다. 39절에서 45절에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주의 약속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모하게 올라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뒤늦게 올라간 그들은 모두 죽고 맙니다. 여러분, 순종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올라가라고 하실 때 올라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때는 안 올라가다가 40년 동안 방황할 것이라고 말씀하니까 무모하게 올라간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은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내가 원하는 때에 하는 것은 교만이자 불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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