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신앙의 본질과 우리의 자세와 방향(3)

새벽지기1 2019. 12. 23. 21:21


신앙의 본질과 우리의 자세와 방향(3)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시대는 어떠했는가?

로마의 압제와 수많은 삶의 피폐함과 고달픔의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올바른 자세와 방향은 어떠한 것이어야 했는가?


그 당시 유대는 로마의 전복을 위한 열심당도 있었고 애국하려는 나름의 방법들과 과정들이

얼마나 지난하고 생사를 가늠하는 고통과 억울함과 치욕들이 있었겠는가?

한편으로는 비록 성경적이지 못한 굴절된 메시아 사상이지만 영혼의 메시아가 아닌 로마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향한 진정한 전쟁의 용사의 이미지와 오병이어로서의 복지까지 해결할 수 있는 걸출한 혁명적 메시아를 고대하며 얼마나 지리멸렬한 역사를 이어왔는가?


예수님은 때가 차 매 이 땅에 오셨지만 어떤 정치적 사회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무엇을 타도하고 전복하기 위해 피켓을 들거나 제자들을 충용하지 않았다.

그분의 메시지는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사탄의 세력들인 죄의 사슬과 저주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영혼의 구세주로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우리가 볼 때, 노예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아래 노예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성경은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고,

노예를 두고 있는 상전들에 대하여 잘잘못을 질책하거나 그런 문제 자체를 곧 바로 구원의 문제나 심판의 문제로 비약시키지도 않으셨다.


물론 그것이불합리한 일임에도 그러나 성경은 그게 잘하느냐  잘못하는 것이냐는 관심이 없다.

우리의 현재의 삶이 어떠한 처지라 할지라도 심지어 노예로 태어나는 것이라도 해도

하나님을 더 잘못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이런 문구들이 나오는 것이다.


''종들아 두려워하며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해라'''
이런 구절들을 깊은 성찰과 신앙의 본질에 천착(穿鑿)하지 못한 채,

신학적 뿌리와 기저 없이 눈에 보이는 듯한 정의와 인간적 의분을

하나님의 피 묻은 자유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와 동일한 것으로 대치하는

자기 열심과 신념에 치우칠 수 있음을 부디 명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