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출발의 나팔소리

새벽지기1 2019. 10. 7. 06:37


하나님께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여주시며 하나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 나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끝까지 인도한다.” 이것은 인간이 흉내 낼 수도 없거니와 인간이 만들어 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1절~2절).   


회막으로 모으시는 하나님 


먼저 묵상할 것이 나팔입니다. 이 나팔은 작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백만 정도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머무르고 함께 움직이고 함께 모이기 위해서는 공통된 신호체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떠올랐지만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돋우는 신호가 필요했습니다. 혼란, 나태, 조급함, 영적 무질서를 넘어 질서, 순종, 기다림, 영적 민감성을 줄 수 있는 신호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나팔입니다. 언제 어떻게 나팔을 불어야 할까요? 첫째, 회중을 회막 앞으로 모이게 할 때입니다(3절~4절). 나팔을 하나만 불면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의 천부장들만 모였고, 둘 다 불면 온 회중이 회막으로 모였습니다. 왜 모였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광야에서 살 때 하나님은 회막으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이때에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모여야 합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회막 앞으로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회막 앞으로 모여야 하는 이런 때를 주십니다. 그때 하나님은 리더를 통해서 당신에게 나팔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귀로 듣는 은 나팔 소리보다 더 큰 나팔 소리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울려 퍼질 때가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어야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 민감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어려운 사람, 세상, 가정, 가족들을 향한 나팔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집중해. 그러면 살아”라고 말씀하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영적교제입니다. 교제란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을 넘어 섭니다. 진정한 영적교제란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비전을 이루는 나팔 


둘째, 비전의 땅을 향해 출발할 때입니다(5절~6절). 처음에 짧게 끊어서 불면 동쪽 진영(유다, 잇사갈, 스불론)이 출발합니다. 또 소리가 나면 남쪽 진영(르우벤, 시므온, 갓)과 레위 지파와 회막, 그 다음에 서쪽 진영(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그 다음에 북쪽 진영(단, 아셀, 납달리)이 움직입니다. 여러분, 이 나팔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잘못 들어서 남게 되면 광야에서 죽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미련을 버리고 떠나십시오. 이것은 방황이 아닙니다. 방황은 목적이 없이 다니는 것이고, 행진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비전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적지도 없이 떠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모를 지라도 하나님께는 정해놓은 목적지가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는 것이 행복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중간에 회중을 모으기 위해서는 길게 나팔을 불어야지 짧게 불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7절~8절). 길게 나팔을 불면 모이라는 뜻이요, 짧게 나팔을 불면 떠나라는 뜻입니다. 듣는 사람도 혼동하면 안 되고, 부는 사람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주의 음성을 혼동하는 줄 아십니까?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욕심에 근거한 결론이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집을 피우면 때때로 허락을 하십니다. 그러나 고생만 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왜 나팔을 잘못 불까요? 영적 민감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 편안함, 권세욕 등이 영적 민감성을 둔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희미하게 만들고 이상하게 왜곡시킵니다. 욕심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도 내가 실패할 수 있어’라는 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확실한 자리를 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천지만물을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나이, 육신, 형편에 관계없이 나를 통해 일하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욕심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구원과 축제 광야에서는 이렇게 나팔을 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나팔을 불어야 할 때에 대해 두 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셋째, 공격하는 적과 싸울 때입니다(9절). 저는 9절 말씀을 읽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적은 빼고 땅만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땅도 주시고 적도 주십니다. 일을 주실 때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사명을 주실 때는 환란도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나팔을 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셔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길게 불라, 짧게 불라는 말이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나팔은 어떻게 불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정말 어려움 중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향해 구원의 나팔을 부십시오. 그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넷째, 즐거울 때입니다(10절). 즐거울 때는 축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해방된 부림절, 희년 등 절기와 예배 때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하나님은 나에게 축제의 날을 반드시 주신다. 하루 종일 어려운 것 같아도 그 어려움 가운데 축제의 날을 주신다. 그때는 하나님을 향해 나팔을 불어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기억할 것이다’라고 묵상했습니다. 여러분, 평생토록 고생만 하는 것 같은 사람의 인생에도 반드시 축제의 날이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축제의 나팔, 예배의 나팔을 부십시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계 4:11, 7:10)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전 세계, 가족, 이웃을 향해 이 축제와 예배의 나팔을 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팍팍 밀어주실 것입니다.   


재림하실 때 다시 울릴 나팔 


마지막으로 완전한 나팔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들립니다. 우리가 모임의 나팔, 출발의 나팔, 구원의 나팔, 축제의 나팔을 이 땅에서 불지만 그것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실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다 모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천국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그때 못 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모든 크리스천들을 다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혼인잔치와 축제가 열립니다. 그날 예수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신부가 돼서 춤을 출 것입니다(살전 4:16~17). 주님과 함께 진정한 유월절 만찬을 할 것입니다. 눈물의 식탁이 아니라 기쁨의 식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불완전하지만 다른 사람을 향해 회막으로 나아가십시오. 다른 사람을 향해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출발하십시오. 구원의 나팔을 부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을 바라보며 “주님만이 찬양받기 합당하십니다. 주님만이 나에게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예배의 나팔을 부십시오. 주님이 다시 오셔서 하나님께서 나팔을 부는 그날까지 그 완전한 그날까지 세상 안에서, 세상을 향해, 세상을 위해서 희망과 소망과 영성의 나팔을 부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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