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인과 종에 관한 말씀을 듣길 원합니다. 주인과 종은 당시의 제도에 따른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용인과 고용주, 사장과 직원, 리더와 팔로우어(follower)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실하게 주인을 섬기십시오
먼저 종들, 즉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 직원, 고용인으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주인을 대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하듯이 육신의 주인에게 하라는 것입니다(5절). 구체적인 세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두려움으로 대하십시오. 공포에 질리라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떨림으로 대하십시오. 리더나 사장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성실한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볼 때는 잘하고 보지 않을 때는 욕하는 두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안 볼 때도 열심히 하고, 변함없이 자신이 맡은 일을 하십시오(6~7절). 산골짜기에 샘물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그 샘물을 찾아갑니다. 위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실하게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실히 섬긴다’는 말은 개역한글 번역을 보면 ‘단 마음으로 섬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쓴 마음이 아니라 단 마음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기회주의자가 되지 마십시오. 성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일하는 사람의 10계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겁게. 2. 수동적으로 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3. 시키는 일만하지 말고 할 일을 찾아서. 4. 먹고 살기 위해서만 하지 말고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5.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아이디어를 항상 내어서. 6. 지겨워 하지 말고 사랑하면서. 7. 짜증내지 말고 콧노래 부르면서. 8. 죽지 못해 하지 말고 그 일 안하면 죽을 것처럼. 9. 부담으로 하지 말고 행복감으로. 10. 얼굴 찡그리지 말고 활짝 웃으면서. 저는 성실함이 여러분의 인생에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실한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태도를 보십니다
왜 크리스천은 성실하게 살아야 할까요? 성실하게 주님을 대하듯 일하면 자신이 그 복을 다시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8절). 저는 한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제가 제 리더에게 잘하면 언젠가 제가 리더가 되었을 때 저에게 잘하는 스태프를 만날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현재 제 리더에게 대들고 보는 곳에서만 일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욕하면 제가 리더가 되었을 때 그것을 다시 받게 될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그 선을 도로 받을 것입니다. 주님이 갚아 주십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아름답게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참 좋았듯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인생을 사십시오(창 1:31). 그런 삶을 살면 그 복이 자신에게로 다 돌아올 것입니다. 사람의 관심은 늘 내가 종인지 주인인지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종이든 자유인이든 관계가 없습니다(8절). 하나님의 관심은 태도에 있습니다. 위치가 아니라 태도가 중요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합니다. 신분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주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인들에게 종들이 하는 것처럼 행하라고 하십니다(9절).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좋아하고 종은 싫어한다든지, 사회 혁명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종은 귀하고 주인들은 악독하다든지 그렇게 말하지 않으십니다. 사회적인 지위는 하나님의 특별한 대우를 받는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위, 위치를 주십니다. 그것은 칼과 같습니다. 잘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입니다. 약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할 때 강할 수 있습니다(고후 12:9~10). 약하더라도 주께서 역사하시면 기가 막힌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비전을 주는 리더가 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리더로 세워주신 분이 있습니까? 리더가 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리더에게는 고민과 갈등이 많습니다. 리더는 수많은 문제들을 결정해야 하는데 어떤 결정을 하든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늘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한 리더 한 사람 때문에 가정도 살고, 직장도 살고, 민족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협박을 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공갈치지 말라”입니다. 리더들은 돈 가지고 위협하지 마십시오. 지위나 권력을 가지고 겁주지 마십시오. 협박으로 이룬 질서는 잠깐이지만 비전과 꿈과 감동으로 이룬 질서는 영원합니다. 대신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십시오. 꿈을 주십시오. 목숨걸만한 목표를 주십시오. 흥분되는 동기를 제시하십시오. 가슴 벅찬 목표를 제시하십시오. 잘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기억하십니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그 성벽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결단합니다. ‘내가 이 성벽을 쌓으리라.’ 그리고 가서 백성들을 동원합니다. 백성들은 농기구를 가지고 달려들었습니다. 한참 성벽을 쌓는데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절반까지 마쳤을 때 일하던 사람들이 낙심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너희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거야. 너희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거야”라고 위협하거나 협박하지 않습니다. 대신 용기와 꿈을 주었고, 비전을 제시했습니다(느 4:14). 그날부터 부하들의 절반은 일을 계속했고, 나머지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로 무장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목표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지침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솔선수범합니다(느 4:22~23). 그렇게 해서 52일 만에 무너진 성벽을 다 짓습니다. 그때에 비난과 조롱도 끝이 납니다.
최종결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협박하고 겁을 준다고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사랑을 베풀고 모범을 보일 때에 분위기가 바뀌고 사람의 태도들이 바뀌는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있습니다. 문제는 풀리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만약 시험문제를 풀었는데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쓰레기입니다. 풀려야 문제입니다. 인생의 문제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주님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최종결재자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장도, 어떤 최고 권력자도 절대 최종결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종결재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뿐입니다. 저는 여러분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의 결재란에 하나님의 결재란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결재하시겠는가?’ 어떤 일을 하든지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아름답게 살아가십시오. 거기에 감동이 있습니다. 거기에 여러분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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