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제멋대로 사는 백성들

새벽지기1 2019. 2. 21. 07:29


이 세상에서 가장 곤란한 사람이 있다면 제멋대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1~2절이 바로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절은 이방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방인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멋대로 거절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 자신들의 모든 전통과 허울, 수치를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은혜를 받습니다.  


제멋대로 사는 두 부류의 사람 


“나는 내게 물어 오지도 않던 사람들에게도 대답해 주었다. 나를 찾지도 않던 사람들도 내가 만나 주었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다’ 하고 말했다.” (1절) 여기서 ‘내게 물어 오지 않던 사람들, 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 내 이름을 부르지 않던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됐을 때 하나님께 찾아왔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영광을 갖게 됩니다. 참 신기합니다. 전혀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마치 니느웨 도성 사람들이 제멋대로 살다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한꺼번에 돌아와서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모습처럼 참 신비스런 사건입니다.


로마서 10장 20절에서 이사야를 인용한 내용이 나옵니다.   “또 이사야가 아주 담대하게 말하기를 “나를 찾지 않는 자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내게 구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다”라고 했습니다.” (롬 10:20) 사도 바울은 이사야서에 나온 이 예언의 말씀을 신약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2절에서는 정반대의 사건이 전개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불순종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전개됩니다.  “제 멋대로 좋지 않은 길로 걸어가는 고집불통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손을 벌리고 있었다.”(2절)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결국 형식으로만 하나님을 섬겼지 내용으로는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구나’라고 하시면서 하루 종일 손을 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로마서 10장 21절에 요약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내가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라고 했습니다.” (롬 10:21) 결론은 둘 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는 환영을 받고 환영받아야할 이스라엘에게는 거역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거역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슬펐다는 것입니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 고집불통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불순종이고 둘째 거역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유대인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배신한 내용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 척하면서 배신을 할까요.  “이 백성은 그치지도 않고 동산에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벽돌 제단에 분향하면서 언제나 내 화를 돋우던 백성이다. 그들은 무덤 안에 들어가 앉아서 비밀스러운 곳에서 밤을 새고 돼지고기를 먹고 부정한 음식을 그릇에 담으면서”(3~4절) 이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멀쩡한 집을 놔두고 뒷골목에서, 무덤 안에서 숨어서 삽니다. 대개 도박을 하거나 음모를 꾸밀 때는 이런 장소에서 합니다. 본문에서도 그들은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밤을 새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부정한 음식인 돼지고기 같은 것만 골라먹고 좋아하면서 하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리 물러서 있으라. 가까이 오지 말라. 우리는 거룩한데 너희가 다가오면 너희도 거룩해질까 겁난다’하고 말하는구나.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내 콧구멍에서 콧김이 솟는다.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5절) 그들은 가장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거룩해질 것도 없습니다. 자기들은 종교적으로 거룩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자기들과 같이 살면 이방인도 거룩해질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뭐가 된 것처럼 생각하니까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콧김이 솟고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과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분노할 뿐만 아니라 복수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벨론 포로 생활이었습니다.  “보라. 이 모든 것이 내 앞에 기록돼 있으니 내가 침묵하지 않고 갚고야 말겠다. 그들의 죄를 그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앙갚음하겠다. 그들의 죄와 그들 조상들의 죄를 함께 갚아 주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이 산 위에서 희생 제물을 태우고 언덕에서 나를 모욕했으니 그들이 한 짓거리에 대한 값을 톡톡히 쳐서 내가 그들의 가슴에다 갚아 주겠다.” (6~7절) 차라리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회개의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눈치 보면서 몰래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굉장히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두 번 속는 것입니다. 한 번 죄를 짓는 것뿐만이 아니라 죄를 안 짓는 척하면서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몹시 불편하고 배신감이 들게 됩니다.  


불순종의 영  


인간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불순종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역하는 마음, 반항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이란 어떤 곳일까요.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고발하고 화내고 싸우면 지옥입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비판의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비판하고 고발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해하고 수용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고 작은 일만 생겨도 고발해버립니다. 이것은 훈련의 문제입니다. 차분하게 앞뒤를 따져보고 순서를 잡고 참을 것은 참고 이야기할 것은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정말 성숙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고난이 오면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도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습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내 안에 불순종의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반항과 통곡을 통해서, 소리를 질러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문제의 결과가 좋지도 않고 더 비참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불순종의 영을 집어넣어서 ‘대판 싸워라. 고발해라. 화를 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뒤집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스스로 지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영이 있으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행복은 수용하고 이해하며 용서할 때 옵니다. 고발할 때가 아닙니다. 야단칠 때는 기쁨이 오지 않습니다.


조용히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소리 지르지 않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할 때도, 창에 찔릴 때도, 가시 면류관을 쓰실 때도, 로마 병정에게 끌려 갈 때도 소리 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침묵하셨습니다. 신음소리를 내셨습니다. 그것이 순교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긍휼입니다. 사랑입니다. 심판하시고 복수하시면서도 하나님의 마음 한구석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고 구원시키는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회복의 그루터기를 남기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포도송이에 아직 즙이 남아 있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터뜨리지 말라. 그 속에 복이 들었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내 종들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겠다. 내가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내가 야곱으로부터 자손이 나오게 하고 유다로부터 내 산들을 차지하게 할 후손이 나오게 하겠다. 내가 뽑은 사람들이 그것을 유업으로 물려받고 내 종들을 거기에서 살게 하겠다.””(8~9절) 포도송이를 다 땄지만 나중에 포도즙이 조금 있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마저 다 따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포도즙에는 축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긍휼의 씨앗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진노를 받아서 죽게 되었지만 진노와 파멸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의 포도즙을 남겨두십니다. 9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다 망했는데 하나님이 망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으로부터 자손이 나오고 유대로부터 내 산들을 차지하게 할 후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가 뽑은 사람들이 유업을 물려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자손, 내 후손, 내 유업을 나를 통해서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손입니다. 후손입니다. 유업입니다. 정말 존재할 만한 이유가 없는 그런 죄를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그루터기를 남겨두시고, 포도즙을 남겨두시고, 거기에 씨가 나오게 하시고 후손과 유업이 나오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마음에 안심이 있습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의 생각이 들어오면 내가 어떤 조건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협력하여 선을 만드십니다. 자손, 후손, 유업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요, 회복이요, 희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비전이요,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래서 가장 절망적일 때 하나님은 메시아를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가장 절망적일 때 마음속에 하나님이 기억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길이 없고 끝이라고 생각할 때 내 의식과 내 언어, 사고의 틀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나를 찾는 내 백성에게 샤론 평야는 양 떼를 치는 풀밭이 되고 아골 골짜기는 소 떼가 누워 쉬는 곳이 될 것이다.”(10절) 하나님은 양떼들에게 푸른 초장과 잠자는 시냇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여호와를 저버리고 내 거룩한 산은 무시해 버리면서 미래의 행운을 점치려고 상을 펴고 운명을 떠보려고 섞은 포도주로 잔을 채웠다. 따라서 내가 너희의 운명을 칼에게 맡기겠다. 너희는 모두 학살을 당하도록 무릎을 꿇을 것이다. 내가 불러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았고 내가 말해도 너희는 듣지 않았으며, 너희가 내 눈에 거슬리는 일을 했고 내가 기뻐하지 않는 일만 골라서 저질렀기 때문이다.” (11~12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이런 일을 하지 마십시오. 조금만 겸손하고 순종했으면, 조금만 자기를 포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밥상을 다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슬픈 역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우상을 선택할 것이냐입니다. 그 선택의 몫은 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 종들은 먹겠지만 너희는 계속 배고플 것이다. 보라. 내 종들은 물을 마시겠지만 너희는 계속 목마를 것이다. 보라. 내 종들은 기뻐하겠지만 너희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보라. 내 종들은 마음이 즐거워서 환호성을 울리겠지만 너희는 아픈 마음을 부여잡으면서 울부짖고 속이 상해 통곡할 것이다.”(13~14절) 하나님을 선택한 종들과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주의 종들은 배불리 먹고 물을 마시고 기뻐하고 즐겁게 환호성을 지르지만 우상을 선택한 사람들은 배고프고 목마를 것이고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고 울부짖고 통곡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선택입니다.


생명을 위해 하나님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쾌락, 작은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의 그릇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예수님을 선택하십시오. 축복을 선택하십시오.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떠난 역사치고 행복한 역사가 없습니다.  


정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신론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질 중심, 진화론 중심, 휴머니즘 중심으로 삽니다. 기독교가 믿는 신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가짜 신이라는 것입니다. 무신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짜 신입니다. 가짜 신은 우상이고 미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는 참 하나님을 가짜 신으로 전락시켜 놓은 것입니다. 최고의 높은 신앙을 천박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너희 하나님이나 세상의 가짜 신들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너희 하는 꼴을 보니까 그렇다’고 세상이 비판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질서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했던 역사는 평화로웠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는 십자군 전쟁이나 잘못된 신이 들어올 때는 무신론과 더불어 세상은 비참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 집어넣기도 하시지만 궁극적으로 해방과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고난도 주셨지만 영광과 기쁨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가 남긴 이름을 두고 내가 뽑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렇게 저주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너를 죽게 하시겠지만 주의 종들에게는 새로운 이름을 주실 것이다.’”(15절) 고난도 주셨지만 새 이름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16절입니다.“누구든지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성실하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빌고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은 성실하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될 것이다. 지난날의 고통은 잊혀지고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 성실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헤(Elohe) 아멘’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성실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정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멘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궁극적으로 여러분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으십시오. 의심의 안개, 고통의 현실이 다 지나고 난 후에 보이는 하나님의 인자하고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얼굴이 해처럼 여러분에게 비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uri.or.kr/ 일러스트: 최정훈 www.illustschool.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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