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종류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탄원하는 기도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기도가 많습니다. 억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그런 현실을 구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간구의 기도입니다.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세 번째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지나온 일들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눈물의 기도입니다. 네 번째는 고백의 기도입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다섯 번째는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을 찬양하고 그의 창조와 구원을 노래하고 예배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
성경을 보면 아주 유명한 기도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입니다. 다윗의 기도도 유명합니다. 시편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태어나게 했던 마리아의 소원과 찬양을 담은 기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의 모델은 주기도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언부언하지 말고 기도를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위대한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한 장 전체에 나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를 먹고 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기도로 숨을 쉬고 기도를 먹고 삽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실의 고통 앞에서 예언을 들을 때는 희망찼습니다.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은 회복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 들어서 쓰신다는 예언의 말씀을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망차고 기쁨이 충만했지만 현실로 돌아와서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현실 속에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은 예언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언의 말씀을 들으면 현실의 고통을 다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현실의 고통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가지 기도를 합니다. 우선 탄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너무나 힘이 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어렵습니다. 도와주십시오’하며 하소연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탄원기도를 하다보면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기도를 깊이 하다 보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도를 깊이 하면 자신의 허물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탄원 기도에서 고백의 기도로 바뀝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기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탄원 기도 첫 번째 이스라엘의 기도는 긍휼히 여겨달라는 탄원 기도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주의 높은 보좌에서 굽어보십시오. 주의 열정과 주의 강한 힘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주의 간절함과 주의 긍휼이 우리에게서 이제 그쳤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 아버지십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우리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고 옛날부터 주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십니다. 여호와여, 왜 우리를 주의 길에서 떠나 헤매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셔서 주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십니까? 주의 종들을 굽어 살피시고 주의 유산인 지파들을 생각하셔서라도 돌아와 주십시오.” (15~17절)
기도를 읽어보니 하나님 앞에서 약간 하소연하는 것 같습니다. 15절에서 이스라엘의 현실적인 고통과 아픔을 하늘보좌에서 굽어 살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이 빠를까요. 어떤 기도를 하나님이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조용한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절규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15절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며 하소연하던 저자는 16절에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십니다’라는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아버지와 나 사이에 껄끄러운 감정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고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절규 속에서 갑자기 이런 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기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에 대한 의심이 드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아버지를 신뢰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 상상할 수 없는 큰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당신은 내 아버지십니다. 당신은 나를 낳으셨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어법식으로 기도를 합니다.(17절) 제가 뒤집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의 길을 떠나 헤매지 않게 하옵소서’를 ‘여호와여 왜 우리를 주의 길에서 떠나 헤매게 하십니까’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방황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게 하셔서 주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십니까’는 ‘하나님 우리 마음이 확정되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해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자꾸 생기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겨 돌아와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성소 회복을 위한 기도
두 번째 이스라엘은 성소를 기억하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잠시 동안 주의 백성이 주의 성소를 차지했었지만 이제 우리의 원수들이 주의 성소를 짓밟았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오랫동안 전혀 다스린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됐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사람들처럼 됐습니다.” (18~19절) 주의 성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소가 이미 이방인의 손에 의해 짓밟혔기 때문에 가족이 다 헤어졌고 일터도 다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혼의 고향인 성소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과거에는 성소를 청소하고 예배도 드리며 성소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소중한 성소를 빼앗긴 것입니다. 약탈을 당한 것입니다. 약탈을 당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성소를 지켰는데 악한 원수들이 성소를 빼앗아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성소 주변을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때로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살아있는 생물처럼 펄펄 뛰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지루하고 힘들고 모든 것이 감각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망입니다. 목마르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목이 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얼굴이 영적이지 않습니다. 욕심만 많고 옷과 자동차만 생각하고 사업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업도 하고 세상에서 일도 하지만 그 얼굴을 보면 영혼의 고뇌가 있습니다. 영적인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기다리는 영적인 태도를 다른 말로 하면 가난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그 가난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열정,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하나님께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회복시켜주십시오. 하나님 나는 잊힌 존재입니까. 나는 성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잊힌 이방인입니까. 하나님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합니다.
원수를 떨게 하는 하나님세 번째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강림하사 열방이 벌벌 떨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독특한 기도입니다. “주께서 하늘을 손으로 찢으시고 내려오시면 산들이 주 앞에서 벌벌 떨 것입니다. 불이 나뭇가지를 활활 살라 버리듯 불이 물을 펄펄 끓게 하듯 내려오셔서 주의 원수들에게 주의 이름을 알리시고 저 나라들이 주 앞에서 떨게 해 주십시오! 주께서 내려오셔서 하신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 엄청난 일을 하셨을 때 산들이 주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 일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귀로 듣지도 못했고 눈으로 보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주 말고는 그 어떤 신이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64장 1~4절)
여러분 악인이 멸망하고 원수가 패배해서 도망가며 벌벌 떠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대개 원수들에게 기가 질려 있습니다. 세상에 기가 질려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 이 예언자의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찢으시고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위엄과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시자 원수들이 벌벌 떨며 도망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괴롭히던 사탄이 벌벌 떨기를 축원합니다. 사탄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기를 축원합니다. 마귀가 여러분 앞에서 큰소리칠 이유가 없습니다. 기죽지 마십시오. 그들이 벌벌 떨어야 합니다. 세상이 벌벌 떨어야 합니다. 원수들이 벌벌 떨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늠름한 장수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고백의 기도
네 번째 시온은 이렇게 하소연하고 탄원하면서 자기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하고 절망합니다. “주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고 주의 길을 걸으면서 주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으시면 기뻐하시는데, 보십시오. 우리는 계속 잘못을 저질러서 주께서 노여워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부정한 사람처럼 됐으니 우리가 실천한 모든 의로운 행동은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으니 우리의 죄가 바람처럼 우리를 쓸어 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를 붙들려고 애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녹이셨습니다.” (5~7절)
때로는 하나님 앞에 진솔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계속 잘못을 저질러서 주 앞에서 노여움을 샀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했던 의로운 행동은 더러운 옷이었습니다. 나무처럼 시들었고 우리 죄가 우리를 쓸어버렸습니다. 아무도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를 붙들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셨고 죄 때문에 우리를 녹이셨습니다’는 아홉 가지 고백을 합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는 눈물이 있고 비참함이 있고 얼굴이 찡그러졌을 것입니다. 얼굴이 찡그러지는 것은 당신이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십니다 이제 황폐한 시온을 구원해 달라는 탄원의 기도를 8절부터 12절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주의 진흙이고 주는 토기장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의 손이 만드신 작품입니다. 여호와여, 너무 많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죄를 영원히 기억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우리를 눈여겨보아 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주의 백성입니다.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됐습니다. 시온이 광야가 됐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됐습니다. 우리의 조상이 주를 찬양하던 그곳, 거룩하고 영광스럽던 우리의 성전이 불에 타 버렸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이 황무지가 됐습니다. 여호와여, 이 모든 일에도 주께서 물러서 계시겠습니까? 우리가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데도 그저 잠잠히 계시겠습니까?” 이 기도 가운데 기막힌 통찰력 있는 발견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가슴을 쥐어짜는 고백의 기도를 하다가 문득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삶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울 수도 있고 통곡하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8절처럼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주의 진흙이고 주는 토기장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의 손이 만드신 작품입니다”라고 하십시오. 이 사람이 진흙 바닥 속에 있다가 튀어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섭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나는 이렇게 짓이겨지고 버려지는 막그릇처럼 느껴졌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이 빚으신 토기였습니다. 나는 진흙이었고 하나님은 그 진흙을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만드시는 토기장이였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폐품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위대한 걸작품입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흥분되지 않으십니까. 나의 존재와 가치가 살아나고 나의 영광스런 모습이 여기서 살아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은혜
결론을 내리면 이스라엘의 탄원과 고백의 기도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다’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탕자가 돌아옵니다. 탕자가 쥐엄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이국에서 거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었던 용기를 냈던 것은 ‘그가 내 아버지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고아가 아닙니다.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여러분이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밑바닥까지 갔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행위를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십니다. “여호와의 인애하심이 끝이 없는 것은 그분의 긍휼하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하심이 큽니다.” (애 3:22~23)“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롬 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비록 탕자라 할지라도 나는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십니다. 자비는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끝이 없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희망을 가지십시오. 회복되십시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성경책을 다시 드십시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시작하십시오. 포기했다가도 오늘 다시 성경책을 드십시오. 교회에 다시 나오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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