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

새벽지기1 2019. 2. 25. 10:25


이사야의 마지막 장 66장을 공부하는 날입니다. 이사야 66장은 자세히 봐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책망과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해서 끊임없이 사랑의 책망과 경고를 하십니다. 둘째, 위로와 격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과 경고만 하시지 않고 반드시 위로와 격려를 해주십니다. 이 위로와 격려는 구원과 회복의 지름길입니다. 셋째, 최후 심판과 새 시대의 도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광스런 나라를 준비해주셨던 일이 66장 안에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사야 66장의 세 가지 주제 중에서 첫 번째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사랑의 채찍과 경고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배의 내용을 보시는 하나님  


무엇에 대해 하나님은 책망하시고 경고하시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고국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처음 목격한 것은 무너진 제단이었습니다. 성전이 훼파되고 성곽이 무너진 비참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굉장히 조급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곽을 회복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문제는 성곽을 재건하고 성전을 다시 짓는데 열심을 내다보니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집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속이 상하셨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있어야 하지만 건물이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교파에 소속되어 있지만 교파가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형식과 전통에 너무 치중하게 됩니다. 그것을 열심히 하다 보니 막상 주인공은 간곳이 없고 비본질적인 형식만 붙드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착각 할 때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를 오래 다녔거나 신앙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책망하시고 경고하시는 첫 번째 말씀은 진정한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 성전이 무엇으로 지어졌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상에 있는 건물이 아무리 좋고 기념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만큼 좋고, 우주만물보다 더 위대하겠습니까. 형식도 중요하겠지만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이 오늘 말씀 이사야 66장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은 내 보좌이고 땅은 내 발판이다. 그런데 너희가 나를 위해 어디에 집을 짓겠다는 말이냐? 어디에서 나를 쉬게 한단 말이냐?”(1절) 지상의 성전이란 우주 안에 있는 성냥갑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그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께 거기에 들어가 계시라고 합니다.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인데 성전 안에만 계시겠습니까. 이것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전을 지어놓고 마치 큰일을 이룬 것처럼 자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웃으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란 웅장한 건물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위대하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와 예배자  


모든 것은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절 상반절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손수 만든 것이 아니냐?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다.”내가 집을 잘 지어놓았는데 누가 그 집에 와서 나보고 살라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마치 종교적 행위에 있어서는 인간이 하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위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함과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라도 주의 것입니다. 주는 높으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세상 모든 것의 머리십니다.”(대상 29:11) 시편에는 예배가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정말 위대하십니다. 주께서는 영예와 위엄으로 옷 입으셨습니다.”(시 104:1) 그분께 예배하고 그분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고 그분이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분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참된 예배자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학대를 받아서 괴로워하는 사람, 마음이 찢어지고 깨진 사람, 내 말이라면 벌벌 떠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을 연상하게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팔복의 이야기와 아주 흡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이 굽어보는 사람은 누구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사람이 드리는 예배일까요. 세 종류의 사람입니다. 첫 번째 학대를 받아서 괴로워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 마음이 찢어지고 깨진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 말이라면 벌벌 떠는 사람입니다.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 다른 말로 하면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예배에 익숙한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별로라고 생각하십니다. 그 안에는 진실과 눈물, 갈급함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에 따라 드리는 예배와 그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거부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예배를 거부하고 싫어하실까요. 3절의 이야기인데 종합해보면 종교적이고 전통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힘들어하십니다. “그러나 소를 잡아 드리는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사람과 다름이 없고 양을 잡아 드리는 사람은 개의 목을 따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 곡식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돼지의 피를 바치는 사람과 다름이 없고 분향을 드리는 사람은 우상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제각각 자기 식대로 마음을 먹고 가증한 것들을 좋아했다.”(3절)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거북한 예배는 예배를 제사처럼 생각하는 사람의 예배입니다. 제사란 율법에 규정한 대로 소를 잡고 양을 잡아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소와 양을 드릴 수가 없을 때는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 소와 양을 잡아 피를 뿌리고 곡식으로 제물을 드릴 때는 향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통회하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 갈급한 마음, 상한 심령이 없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 무거운 짐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익숙하게 형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소나 양을 잡아 피를 뿌리는 것은 사람을 죽여서 피를 흘리는 것과 뭐가 다르고 개의 목을 따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예배는 우상에 무릎을 꿇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하십니다. 이것이 3절 말씀의 요점입니다. 이런 예배는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드려도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욕보이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감동이 없는 예배에 대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칙   


“그래서 나도 그들을 괴롭히기로 마음을 먹고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가져갈 것이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았고 내가 말해도 그들이 듣지 않았다. 그들이 내 눈에 거슬리는 일을 했을 뿐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했기 때문이다.”(4절) 후반부를 보면 ‘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고 내가 말해도 그들이 듣지 않았고 내 눈에 거슬리는 일만 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도 기뻐하고 내가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이 가증하는 일만 골라서 고집대로 행하면 하나님도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내게 임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약 4:8)‘ 내게로 가까이 하라 그러면 나도 너한테 가까이 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멀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은 더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한 번 교회에 안 가기 시작하면 교회에 안 갈 이유가 자꾸 생깁니다. 나중에는 더 멀리 가서 돌아온 탕자의 주인공이 됩니다. 잘못된 예배에서 오는 우리의 편견과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무서운 것이 임하게 되고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불의한 자들에게 주시는 세 가지 책망과 경고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말해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고난에서 빠져나올 구멍만 찾습니다. 내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가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니까 가인은 ‘제가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인에게 심판이 왔을 때 ‘내 벌이 너무 무거워 견디기가 어렵습니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감추고 생각하기 싫어하면서 당하고 있는 것만 억울하고 불편해합니다. 죄인이란 도망자와 같습니다. 안식처가 없고, 피난처가 없습니다. 회개하기 전에는 안식처와 피난처가 없습니다.  


예배는 최고의 우선순위   


오늘 우리들이 이사야 66장 첫 부분에서 배워야할 교훈은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 중에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온누리교회의 모든 활동 중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과 놀라우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최고의 우선순위입니다. 예배가 진정으로 드려지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합니다. 사역도 삶도 다 풀립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중지하기 바랍니다. 예배를 짧게 드리거나 한순간 드려도 되니까 진지하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경험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는 것은 건물이나 제도 등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된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찬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예배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요, 마음이 애통하는 사람이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이사야 66장에서 주는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입니다. “너는 네 온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신 6: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되는 계명이다.”(마 22:37~ 38)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본질로 돌아갑시다  온누리교회가 횃불회관 지하를 처음 빌려서 시작할 때 열두 가정이 모였습니다. 그때 새로운 교회를 하면 정말 예수님이 원하는 교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하는 고민을 1년 정도 했습니다. 1년쯤 지나니까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주시는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과 같은 교회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시작할 때 우리 교회 첫 멤버들에게 행함으로 얻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진짜 내면의 인격적인 변화를 통해서 세워지는 교회를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모든 사역을 다 멈췄습니다. 목사, 장로, 집사라는 타이틀도 붙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다 반납시키고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고, 만나서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는 것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열두 가정이 모이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교회 중에 영적으로 최고로 만족함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말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거듭난 크리스천인지 본질을 생각하면서 시작한 것이 온누리교회입니다. 한 1년쯤 지나 80~90명이 되었고 정식 오픈을 하니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대일과 큐티, 소그룹 기도모임만하고 다른 것은 안했습니다. 교회가 따뜻해지고 은혜가 넘치며 사람들이 순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성령이 임하면 참 순박해집니다.그런데 교회가 은혜를 많이 받으니까 사역이 많아졌습니다. 사역이 많아지다 보니 초창기의 그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위보다는 본질을 더 우선순위에 두었던 온누리교회 초창기 때가 생각납니다.


온누리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배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샘물이 솟듯이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신앙도 본질로 돌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고 예배로 돌아가고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분께 영광을 돌려 드리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언제나 영적인 본질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기도로 돌아가게 하시고

성령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예배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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