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최후의 심판과 새시대의 도래

새벽지기1 2019. 3. 5. 15:43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심판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심판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심판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심판 태초에는 천지창조가 있었고, 종말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럼 최후의 심판으로 다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 뒤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인 66장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최후의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심판을 하실까요? 죄로 더렵혀진 세상을 그냥 두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이 더러우면 새 옷을 입지 못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을 사모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더러워진 모든 것을 씻어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사건입니다(히 9:27).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죽음을 준비합니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 말고 죽을 것처럼 사십시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우리는 개, 소, 말, 돼지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에 시작이 있다면 종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종말로 다 끝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분,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죄를 심판하십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불을 타고 오신다. 그분의 병거들은 마치 회오리바람 같구나. 그분이 분을 내셔서 뿜으시는 콧김은 불꽃을 내뿜는 책망이 돼 보복하신다.(사 66:15)


심판자 하나님은 세 가지 모습으로 오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불을 타고 오십니다. 이것은 불로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노아 시대에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이 시대에는 불로 심판하십니다. 온 우주가 화염에 휩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하늘의 군대를 동원해서 오십니다. 이것을 15절에서는 ‘그분의 병거’라고 했습니다. 병거는 전쟁할 때 쓰는 수레입니다. 전사들이 병거를 타고 회오리바람처럼 오는 웅장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오실 것입니다. 셋째, 분노의 불꽃을 내뿜고 오십니다. 심판은 장난이 아닙니다. 한번 야단맞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씨가 사라지고 근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불과 칼로 심판 받는 우상 


렇다. 여호와께서 불로 심판하시고 주의 칼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니 여호와께 죽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사 66:16) 16절을 보면 심판의 도구 두 가지가 나옵니다. ‘불’과 ‘칼’입니다. 고대전쟁은 불과 칼의 전쟁이었습니다. 불로 화살을 쏘고 칼로 도륙합니다. 이 고대전쟁의 모습으로 심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전쟁이라면 원자탄이 터지고, 지구상의 유전이 터지고 화염에 쌓일 것입니다. 이러한 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속에서 불을 보았는데 나무가 타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화염검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엘리사는 사환에게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수레를 보여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러한 모습들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다 준비하셨습니다. 불도 준비하셨습니다. 불수레와 불말을 다 준비하셨습니다. 이제 회오리바람처럼 죄를 지은 인류를 향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쓸어버리듯이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심판하십니까? 17절에 심판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고 몸을 정결하게 한 뒤에 그 동산에 들어가서 돼지고기와 쥐고기와 다른 가증스러운 것을 먹는 사람들과 함께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함께 끝장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사 66:17)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고 몸을 정결하게 한다’라고 하니까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종교적인 의식을 준비하기 전에 자기를 거룩하게 하고, 몸을 정결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심판을 받을 자들이 행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심판, 다가오는 축복 


이런 사람들은 끝장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시기 때문입니다. ‘돼지고기와 쥐고기와 다른 가증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런 것들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66장 17절은 간단하게 이야기 하지만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좀 더 자세하게 둘째 사망에 들어갈 사람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종말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노아시대에 물의 심판이 있기 전에는 아무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의 심판이 오고 나니까 사람들이 그때 안 것입니다. 불의 심판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있습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종말이 끝입니까? 아닙니다. 종말이 끝이라면 모든 것이 파괴되어야 합니다. 종말이 끝이 아닌 이유는 종말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초점은 종말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종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가증스러운 사람들, 우상숭배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심판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심판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갈 수 있습니다. 심판 없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오지 않습니다. 심판을 통해 우상숭배자들, 살인자들, 간음하는 자들, 점술가들, 가증한 사람들이 끝이 납니다. 반대로 경건한 자들, 예비된 자들에게는 새시대가 열리고 시온의 새로운 도성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고 감사와 기쁨의 축제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열방을 향한 구원의 섭리  


“나는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알기 때문에 때가 되면 언어가 다른 나라를 모두 모으겠다. 그러면 그들이 와서 내 영광을 볼 것이다.” (사 66:18) 여기서 이사야서의 결론을 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심판할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는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알기 때문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 대적들의 행동과 생각을 아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정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악인을 심판하는 것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모든 열방과 민족에서 경건한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셔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구약인데 구약에서 이방인을 불러 모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만 구원받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조금 실수는 했지만 선택받은 백성, 선민인 이스라엘만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심판받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동향 사람이니까, 동창이니까 봐줄 줄 알았다면 오산입니다.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끈을 붙잡고는 자기는 봐줄 거라 생각합니다. 봐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과 상관없습니다. 


둘째, 이방인이라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때가 되면 언어가 다른 나라를 모두 모으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모든 열방, 모든 민족, 모든 나라와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을 펴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내 소유로 삼을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선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지금 보면 선민인 이스라엘보다 우리가 더 예수를 잘 믿고, 더 열심히 믿고, 더 열정적으로 믿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원근 각처에서 다 불러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는 영광  


“내가 그들 가운데 징표를 두어서 내가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몇몇을 다시스와 뿔과 활잡이로 유명한 룻과 두발과 야완과 내 명성을 들은 적도 없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저 먼 섬들에게로 보내서 여러 나라에 내 영광을 알릴 것이다.” (사 66:19)  이 말씀을 그냥 읽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불러 모아 두 가지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징표와 선교의 사명입니다. 마치 신약의 사도행전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사야서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심판과 더불어 이방인을 불러 능력과 이적과 사인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고 가본 적도 없는 아주 먼 곳까지 미전도종족에게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 예언을 빨리 이해하지만 구약 시대 사람들은 이 예언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와서 보니까 그것이 맞는 말이고 예언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표를 주시고 열방으로 파송해서 내 명성을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여러 나라에 영광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일본에, 대만에, 남미에, 중국에 갑니까? 왜 우리가 1천 명의 선교사를 보내려고 합니까? 이 예언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난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백성들, 민족들에게 병과 가난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왜 뛰어 들어갑니까? 이 예언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타지에서 삽니까? 왜 가난하고 에이즈 걸린 사람들, 사납고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테러를 당합니까? 오늘 이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여러 가지 지명이 나옵니다. 주석을 보니까 다시스는 성지에서 최서단 항구이고, 뿔은 북아프리카고, 룻은 나일강 하류이고, 두발은 유프라테스강 상류이고, 야완은 그리스 헬라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온에서 가장 멀리 있는 도시들입니다. 이 도시들에게로 가서 여호와의 영광을 선포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66장의 마지막 절에 있는 예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까 무슨 말씀이 떠오릅니까?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행 1:8) 할렐루야! 이것이 온누리교회입니다. 이것이 Acts29입니다.  


거룩한 산으로 돌아오는 형제들  


그러면 누가 가겠습니까? 누가 보내야겠습니까? 누구나 좋은 직장, 좋은 집,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하지 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가족, 직장, 젊음을 버리고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깨끗한 그릇에 선물을 담아서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것처럼 그들이 모든 나라들로부터 너희의 모든 형제들을 말과 병거와 마차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서 예루살렘에 있는 내 거룩한 산으로 데려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사 66:20) 할렐루야!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데려온다는 것입니다. 시온의 영광스런 산으로 데려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8일~29일에 대만에 갔었는데 굉장히 놀랐습니다. 우리와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대만은 지난 10년 동안 잘못된 정치 지도자를 만나 나라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고 황폐해졌습니다. 이번 3월에 우리처럼 선거를 다시 하는데 그들의 희망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대만 분들이 우리를 초청했는데 얼마나 열정적이고 간절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대만에도 복음의 황금기가 오고 있었습니다. 오는 6월에 2만 명 집회를 하겠답니다. 자기들이 돈을 다 낼 테니 우리에게 그냥 오라고 했습니다. 일본은 두드리고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대만은 두드리기도 전에 문이 열렸습니다. 지금 남미도 그렇습니다. 남미도 문을 활짝 열고 저희들이 오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10만 명 집회도 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건강 때문에 못 간다고 했는데 벌써 거기는 ‘생명의 삶’이 4만 부나 나갑니다. 얼마나 열심이고 영적으로 갈급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 여기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전 세계에 내보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사람들, 하나님의 명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십니다.   


도래하는 새 하늘과 새 땅 


“내가 그들 가운데 몇몇을 뽑아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으로 세우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사 66:21) 이방인을 불러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그들 중에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으로 세우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이방인이 레위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너희의 자손과 너희의 이름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여호와의 말이다. 매달 초하루와 안식일마다 모든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내게 절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사 66:22~23)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결론이요 이사야서의 결론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궁극적으로 보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 땅이 아니라 저 땅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서 밥 먹고 잠자고 일하지만 우리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니까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유대 사람이든 이방 사람이든 차별이 없습니다. 동일하신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셔서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십니다.”(롬 10:12) “ 유대 사람도 없고 그리스 사람도 없고 종도 없고 자유인도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기 때문입니다.” (갈 3:28)  할렐루야! 죄는 인간을 구별합니다. 죄는 인간을 분열합니다. 죄는 인간을 속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구별도 분열도 속박도 없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에서 23년간 목회하면서 참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에는 지방색이 없습니다. 온누리교회에는 파벌이 없습니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 배운 자나 못 배운 자가 다 하나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복음과 죄의 용서  (0) 2019.03.13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다  (0) 2019.03.07
위로와 격려  (0) 2019.02.27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  (0) 2019.02.25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0) 2019.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