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회복해야 할 신혼의 사랑(1) (렘 2:1-2)

새벽지기1 2018. 1. 31. 07: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렘 2:1-2) 

 

예레미야가 활동하였던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적 상황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있었다. 그것은 일반 백성들뿐 아니라 제사장이나 선지자와 같은 지도층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을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따랐느니라”(렘 2:7-8) 그런 점은 여호와와 싸울 대적이 더 이상 이방나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라고 지적한 것에서 잘 드러나 있다(렘 2:9).

 

그런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젊었을 때 곧 하나님과의 신혼생활을 보냈던 아름다운 시절의 사랑을 기억하신다는 점이다. 그때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시절이었다. 그 광야는 ‘씨 뿌리지 못하는 땅’이었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되어주셨다. 그때 이스라엘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보살피고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었다.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었던 순수함의 사랑이 다시금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 그것이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기억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자카르’의 어원적 의미는 '속으로 파고들다'(penetrate)라는 뜻이다. 그것은 단순한 외형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내용까지도 침투해 들어감을 의미한다. 즉 히브리어에서의 기억은 그 기억 속에 담긴 본질적 의미를 파고들어 그 본질을 끄집어 올려 오늘에 재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그 내용을 오늘에 되살리는 재창조의 과정이 ‘기억하다’의 의미이다. 광야에서 경험하였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신혼 추억은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실제로 경험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청년이었을 때 갖고 있던 인애와 신혼시절의 사랑이다. 여기에서는 두 종류의 동의평행법이 사용되었다. 하나는 ‘청년’과 ‘신혼’이고, 다른 하나는 ‘인애’와 ‘사랑’이다. ‘청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우림’은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신혼’과 동의어이다. ‘인애’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세드’는 약속에 대한 변치 않는 성실성을 의미한다. 그것의 동의어인 ‘사랑’은 히브리어로 ‘아하바’인데, 하나에 집중하는 열정적 사랑을 의미한다. ‘인애’가 사랑의 법적 근거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사랑’은 그 근거 범위 안에서 마음껏 누리는 행복감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정기적으로 갱신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첫 믿음과 사랑이 변질되지 않은 채 계속 유지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신혼시절처럼 가장 가깝고 친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최종적으로 언약을 갱신하신 일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나누었던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때 예수께서는 새 언약을 약속하셨고, 그것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그 성취가 시작되었다. 성령의 강림으로 성령 중심의 새로운 교회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새로운 밀월시대가 열린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 언약의 온전한 성취는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동안 교회는 성만찬 의식을 거행함으로 새 언약을 지속적으로 갱신하여야 한다(고전 11:23-26). 성만찬 의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기억)하는 것인데, 출애굽에서 시작된 하나님과의 신혼을 오늘에 재현시키는 거룩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밀월시대의 아름다운 추억을 과거 속에 그냥 묻어두는 것을 몹시 싫어하신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뜨겁게 나누는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같은 방향으로 전진하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성경에서 강조되는 하나님과 동행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하여 독생자이신 예수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의 밀월관계 회복을 그만큼 간절히 원하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동행하는 삶이 없다면,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무시하고 무력화시키는 큰 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