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0편 말씀은 총 150편이 되는 시편들 중에서 유일하게 모세가 쓴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킨 후에 그들과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고 죄악을 범함으로써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는 시편 90편을 기록했습니다.시편 말씀에 인간의 무능과 한계 그리고 죄악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을 노래하며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
모세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분이시고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고백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4절 말씀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모세의 고백을 통해 살펴본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거처’(居處)란 거주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은신처가 되시며, 우리가 피할 산성이 되시고 도피성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대대에 걸쳐 오랫동안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온 뒤에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400여 년의 노예 생활에서 힘들게 탈출해 나왔는데, 겨우 광야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그들은 광야에서 집을 짓지 않고 천막을 치고 생활했습니다. 주변에 구름기둥이 머물면 천막을 치고, 그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천막을 걷고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 끝임 없이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짐을 싸고 풀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거처를 소망하고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거처가 되시고 은신처가 되시며 피난처가 되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돌아가야 할 본향이라는 뜻입니다.모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우리는 세상을 영원한 거처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인생은 영원히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 순례자, 방랑자가 되어 떠돌아다니는 게 일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거처가 되어주신 것처럼,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도 영원한 거처가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머물 곳은 이 땅의 집이 아니라, 언젠가 주님께로 돌아갈 본향입니다.
천지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
둘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모세는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산, 땅, 나무, 우주 등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이 생기기 전부터 계셨고, 그 하나님께서 삼라만상을 창조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산, 나무, 하늘, 바다, 땅 등이 천지 만물이 생성되기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도 창조하시고 모든 인생을 관통하시며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
셋째, 하나님께서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천년이라는 긴 세월도 하나님께는 어제 같고 한 경점(更點) 같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보았고, 그 영원의 주인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도 영원히 살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분이심을 곧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보고 고백하고 있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바라보고 고백하는지요. 마치 천년이 하루와 같은 그분의 시간 앞에 우리는 미미한 존재임을 고백하는지요. 그분의 영원하심 앞에 우리는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는지요.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5, 6절 말씀을 봅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모세는 인간에 대해 유한한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홍수처럼 쓸려가는 존재, 잠깐 자는 것 같은 존재, 아침에 피어 자라다가 저녁이면 꺾여 말라버리는 풀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곧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16세 때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지금 저의 아이가 15세인데, 내년에 그 아이가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제가 아내를 만났던 일이 한순간 같고 엊그저께 같은데 말입니다. 프로 축구에서 차두리나 이천수 선수가 공을 차면 멋지게 들어갑니다. 그런데 제가 공을 차면 떼굴떼굴 굴러갑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벌써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모세의 고백처럼, 잠깐 자는 것과 같습니다.우리는 어렸을 때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나이를 먹고 세월의 떼에 절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행했던 많은 일들이 아침에 돋는 풀의 꽃과 같은 영광이지만, 곧 저녁이 되면 베임을 받아 마를 수밖에 없는 것들로 돼 버립니다. 7~9절 말씀을 읽습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모세는 인간이 죄로 오염돼 있고 주님의 노에 의해 소멸되며 주님의 분내심에 놀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홍해를 건너면 가나안까지 도보로 일주일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쉽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야 했습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고 법궤를 받으며 성막에 관한 지침을 받은 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합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그곳에서 모세는 열두 명을 선발해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 정탐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은 한결같이 정탐 결과를 부정적으로 보고합니다. 실로 가나안 땅은 아름답고 산출된 포도송이도 크고 훌륭하며 주민들도 거인이고 성은 견고하다며 알려 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 앞에서 메뚜기일 뿐이라고 보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에 대해 의심하고 불평하며 불순종합니다.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40일 동안 정탐했는데, 하루를 일년으로 삼아 40년을 광야에서 생활하다가 죽게 됩니다.모세는 우리의 죄악이 주님 앞에 놓여 있다고 일깨워 줍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더렵혀진 존재입니다. 죄에 의해 오염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할 뿐 아니라,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그 은밀한 죄는 하나님의 얼굴빛에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26절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주님의 노(怒)에 서지 못하고 금방 사라지며, 주님의 분내심에 놀라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10, 11절 말씀입니다.“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모세는 120세를 살았습니다. 여기서 모세가 말하는 70, 80세는 실제 나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생은 70세이든, 80세이든 일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특히 모세는 인생에 대해 신속히 날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해 약속 받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연약하고 부족하며 죄로 인해 희망마저 사라져버리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인생이라고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인간은 능력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 아무 힘도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건강, 기억력, 힘, 꿈도 점차 쇠약해져 갑니다. 인간은 삶에 대해 70, 80세라고 자랑하지만, 그 기간은 수고와 슬픔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작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발견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인간
그런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세 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첫 번째로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12, 13절 말씀을 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이 말씀에서 모세는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연수(年數)를 셀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겨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덧없고 허망하며 한순간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 한계를 아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저는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고인이 사회적으로 어떤 직업, 어떤 지위에 있었든지 흙에서 온 육신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또 언젠가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 다녀와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아기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저의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입니다.결혼식에서 주례할 때마다 그 순간만큼 행복하고 기쁜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인생이 행복하면 좋겠지만 갈등, 고난, 어려움 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은 유언장을 쓰는 문화가 아니지만, 만약 유언장을 쓰게 된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모세처럼 ‘여호와여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 주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그 분 앞으로 나아오길 바라십니다. 그리고 ‘주님, 도와주소서.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라고 간구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인자를 필요로 하는 인생
두 번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필요로 합니다. 14, 15절 말씀을 읽습니다.“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대로 기쁘게 하소서.”그렇습니다. 고통과 좌절의 깊은 밤이 지나면 아침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제 2004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둠의 밤은 지나갈 것입니다. 눈물의 골짜기도 지나가고, 고통과 아픔과 분노의 구렁텅이도 지나갈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새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적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아들과 신하들에게 배신을 당해 피해 다니는 신세였지만, 그래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찬미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곤고한 날의 밤은 지나가고 기쁨의 아침이 임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는 절대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필요로 하는 삶
마지막으로 인생은 하나님의 비전, 꿈을 필요로 합니다. 16, 17절 말씀입니다.“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여기서 ‘주의 행사’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계획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루시기 원하시는 섭리이며,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계획인 것입니다. 17절에서 “우리 손의 행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손을 통해 이뤄지기를 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뜻을 두고 계십니다. 곧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기 원하시는 그 비전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으로 인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꿈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비전을 찾고 구하며 완성하기 위해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 마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지금 주님께서 어디를 보고 계십니까? 저의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지금 주님께서 무엇을 듣고 계십니까? 저의 귀를 여시고 그것을 듣게 해 주십시오. 지금 주님께서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저의 발걸음을 주장하시고 그 길을 따르게 해 주십시오.”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것에 대해 우리는 기도하고 찾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권면하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님들, 산이 얼마나 높고 큰지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산을 옮길 능력이 있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십시오. 세상의 짐을 짊어지고 가기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내려놓고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비전을 갖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소망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새해 아침을 맞이해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주님의 영원하심과능력 많으심과 인자하심을 사모합니다.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옵소서.우리 모두에게 복을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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