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기도하기에 좋은 계절

새벽지기1 2017. 10. 13. 15:14


어떤 시인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4계절 가운데 특별히 가을에 기도를 말함은 무슨 의미일까요?

시인의 마음은 다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낙엽과 함께 떠오르는 고독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결실을 맺은 사람에게는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에는 감사하게 하소서”라는 말이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실이 없는 어떤 이에게는 가을처럼 쓸쓸한 계절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을에는 생각하게 하소서”라는 말이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을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가을은 점점 공허함을 주는 계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것처럼,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에게는 가을은 밟히는 낙엽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점점 고령화 되어 가는 노년층에서는 가을처럼 가슴 아리는 계절이 없습니다.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은 인생에 대한 절망적인 생각을 갖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행복전도사로 불리던 유명인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는 행복에 대한 책을 20권이나 출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은 너무나 불행하게 마감했습니다. 나이 먹어 찾아오는 육체의 질병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남에게는 행복을 말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 행복을 충분하게 누리지 못했습니다.

가을을 맞이하면서 당하는 씁쓸한 소식입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습니다. 행복은 자신의 의지에 의존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혜가 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일 뿐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역사를 지배하고 있지만 참다운 행복은 어디서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습니다.

시편을 쓴 시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노래하기를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라고 했습니다.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복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지혜는 잎사귀가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의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교훈합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 8:34~36)

이 가을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만나기를 원하는 자에게 만나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어렵고 힘든 인생의 길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가을은 쓸쓸하게 다가오는 계절이 아니라 기도하는 계절이 돼야 합니다. 금식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계절입니다.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최상의 계절입니다. 낙엽을 밟으면서 인생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가 막힌 계절입니다. 어두운 방문을 걷어차고 화창한 가을 하늘과 출렁이는 낙엽을 맞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기도하기에 너무 좋은 계절입니다. 기도할 수 있음이 행복함을 아는 계절입니다. 걸으면서 기도할 수 있고, 하늘을 보면서 기도할 수 있고, 무릎을 꿇고서 기도할 수 있고, 묵상 가운데 기도할 수 있고, 금식하면서 기도할 수 있는 최상의 계절입니다. 우리의 존귀함을 가볍게 만드는 우울함과 공허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은 기도입니다. 이 가을에 우리 모두 깊은 기도의 축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