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하나님과 연합하기 (이사야 56:1~8)

새벽지기1 2017. 9. 26. 07:18


일본이 사상 초유의 지진 해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피해액이 60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주 월요일부터 시작된 주가폭락으로 단 삼 일 동안 공중 분해된 액수가 200조에 달합니다.
그 엄청난 지진 해일을 세 번에 걸쳐 연이어 맞은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소리도 없이.

그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미국의 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되면서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을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미국이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세계는 더블 딥의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주식시장에서 7조 달러의 가치가 사라졌던 2008년도 세계 금융 위기 때, 모든 나라들이
서둘러 수습책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위기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돈으로 슬쩍
덮어버린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위기를 종전의 방법으로 대처한다면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이제는 “이번에도 나아지겠지.”라는 낙관론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27)

세계 금융 위기는 돈이 모래밭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위기는 삶의 기초가 무엇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개인에게 닥친 위기는 각 개인의 삶의 기초를, 세계의 위기는 우리 지구인들의 삶의 기초가
무엇이었는지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상업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 위기 앞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내 삶의 기초를 점검하는 일이며, 모래밭이 아닌 반석 위에 내 삶을 다시 쌓는 일입니다.

정말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세계 금융 위기의 잔해를 뒤지면서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돈을 손쉽게 벌기 위한 불의와
거짓과 협잡과 착취와 속임수를 찾아냈습니다.
기독교가 근간인 미국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봉하는 기독교를 근본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기도가 부족해서 또 위기가 닥친 것이 아닙니다.
기도했음에도 위기가 계속되고 심화되었다면, 기도를 근본부터 재점검해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위기는 예언자 이사야 당시의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위기와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살고 있었고, 포로 생활은 어느덧 수십 년째로 희망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사 56:1)

위기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행태는, 불안해하며 나부터 살겠다고 자기 것을 챙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평과 의를 행하라 하십니다.

우리들의 삶의 기초가 돈이었으며, 그것은 모래임을 확인한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사 3:1)

하나님 외에 우리들이 의뢰하는 것을 제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데 대한 징벌이 아닙니다.
돈에 초연하게, 가난한 금욕생활을 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돈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는 나, 돈 앞에서 부모 형제도 없는 내 자신을 확인하고, 진짜 반석,
새로운 기초를 찾고 그 위에 내 삶을 쌓으라는 조치입니다.

새로운 기초를 쌓는 구체적인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 56:2)

어떤 상황에서도 공평과 의를 행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곧 나타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악을 행치 아니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공평과 의를 행하기 앞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입니다.
무엇보다도 안식일을 강조하셨습니다.

세 번째 계명, 안식일에 관한 계명은 이렇습니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들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일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십계명 중 가장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만큼 왜곡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아 고난도 있고 실패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입니다.
즉, 제칠일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와 함께 쉬며 그분을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만사를 다 잊고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노는 날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주일)이 너무나 변질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억지로 지켜야 하는 의무가 되고, 마음의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벌 받을까 두려워 교회에는 앉아 있지만

마음은 온통 가게에 쏠려 있습니다.

여름 휴가들 다녀오셨습니까?
휴가를 vacation이라 합니다. 헬라어 vacate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바다에 당도하였습니다.
이백만이나 되는 노예들을 맥없이 빼앗긴 파라오는 분통이 터져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 병거 육백 대와 이집트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거를 모아 추격에 나섰습니다.
병거는 오늘날의 탱크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는 시퍼런 홍해 바다 뒤에는 수천 수백의 병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여기서 죽게 하느냐?”
그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가만히 서서”에 해당되는 단어가 바로 ‘vacate’입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가 더 절박할까요, 요즈음이 더 절박할까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호와 하나님과 이집트 파라오의 한판 승부를 구경하라는 것입니다.
제일 재미있는 구경 중 하나가 싸움 구경입니다.
그것도 평소에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불량배가 혼쭐나는 것을 보면 속까지 후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 이집트와 파라오가 홍해에서 혼쭐이 났다면,
오늘날에는 우리들을 괴롭힌 돈이 혼쭐이 나고 있는 중입니다.
이집트의 패망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무엇보다도 통쾌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금융 위기를 보면서 우리들도 통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맘몬 신이 지배하는 세상을 징벌하고 계시는 중이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식일, 오늘날의 주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여러분들은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루하십니까, 아니면 짧게 느껴지십니까?
예배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예배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빈곤해졌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구약의 제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제사’는 히브리어로 ‘코르반’으로 그 뜻은 ‘친밀해지다’, ‘가까이 가다’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친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sacrifice가 되었습니다. ‘희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뭔가 바쳐야 하고 내가 손해를 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도 희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타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은 여호와를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가까운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일’은 영어로 Lord's Day, 곧 ‘내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입니다.
그 중심에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는 worship입니다.
이 말은 worth-ship, 문자 그대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나의 주님을 만나 설움과 걱정과 피곤을 날려 보내고, 땅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지혜와 영감과 능력을 얻는 날입니다.

예배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인도자나 설교자나 기도자나 성경 봉독자나 성가대나 모두 모두 예배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배를 가치 있게 만들까요?

6절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무엇보다도 여호와와 연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연합하다’는 히브리어로 ‘라와’입니다.
여기서 ‘레위’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레위인들은 여러 지파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여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게 한 특별한 존재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모든 사람들은 레위인들입니다.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연합할수록 예배가 가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하여 성도들이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 하늘나라에 가서 무엇을 할까요?
낙원에서 소풍을 다니며 희희낙락 즐길까요, 쇼핑을 하거나 축구를 할까요?
그것도 하루 이틀입니다.
매일 뚜렷한 목적 없이 노는 것처럼 고역도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하는 일도 예배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1-3)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온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군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영원한 복음, 하늘나라에서도 통용되는 복음은 “하나님의 경배하라.”, 곧 예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분을 영원히 경배하게 된 것이 내게 일어난 가장 기쁜 일,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공산치하의 동유럽에 살던 몰도바 청년은, 박해시절 이웃들이 의심하지 않는 곳은 옥외 변소뿐이라
냄새나는 그곳에서 비밀 예배를 드렸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자유로워지니까 교회가 열정을 잃었습니다.”

12지파 중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땅을 주었습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섬기며 여호와를 사랑하며 여호와의 종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대하여 레위 지파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이 경제로 인하여 흔들린다는 것은 너무나 창피스런 일입니다.
레위 지파들이 해야 할 일은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더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고자란 생식능력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곧 “나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또 스스로 끝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 안에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라.”(사 56:4-5)

이방인이나 몸에 흠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었고,

하나님의 성전을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이방인이라도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라면 ‘자녀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됩니다.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 세 가지가 명시되어있습니다.
1. 안식일을 잘 지키기. 곧 예배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택하는 일
3.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일입니다.

1992년 플로리다에 허리케인 앤드루가 덮쳐 11만 7천 채의 집이 무너졌습니다.
초토화된 지역에 스물일곱 채의 집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서 지은 집이었습니다.
해비타트 운동 창시자, 밀러드 풀러에게 CNN 기자가 물었습니다.
“멀쩡히 서 있는 집은 당신네 해비타트 집들뿐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풀러가 말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기독교 기관으로서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둘째, 우리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렇게 지은 집이니 헤리케인 앤드루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밀러드 풀러와 자원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열심히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이 돈독 올라 사는 우리들로 인하여 맘몬 신이 들어와
휘두르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정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지 못합니다.
그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나 없으면 저들은 하루도 살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것이 바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지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위하여 지으신 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