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가까이 가지 못할 빛 (딤전 6:15-16)

새벽지기1 2017. 4. 21. 07:17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조차 관심이 없다면”

부모의 은덕을 기리는 노랫말을 듣거나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를 읽다보면 부모와 스승을 묘사하기 위해서 무진장 애쓴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 말로 그들의 사랑과 노고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죄송한 일이기에 주로 등장하는 단어들이 하늘, 태산, 바다, 이런 것들이다.

부모 은덕 기리기 쉽지 않아

아마도 이런 현상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정의하고자 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화가가 열정을 그리려면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하고, 순결을 표현하려면 대체로 흰색으로 꾸미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색깔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해 화폭에 어떤 무늬를 그려 넣기 위해 엄청나게 고뇌한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 그래서 성경의 기자들까지도 이 어려움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듯이, 자주 우주의 신묘불측한 현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홀로 하늘을 펴시고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며,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고 별들을 흑암에 가두신다(욥9:6-8). 하나님은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고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신다(시 147:16-17). 특히 욥기 38장에서 41장을 죽 읽으면 하나님의 위용 앞에 그만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욥 자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다(욥 40:4).


이런 어려움은 사도 바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만일 그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일획도 긋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서 사도 바울은 한 단어, 한 단어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엄청난 신학을 함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장중하고 엄숙한 표현을 열거하여 하나님을 묘사한다.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하나님이 복되시고 유일하신 능력자이심을 선언한다. 하나님에게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그 자체가 복스러운 것이며, 다른 어떤 것이 견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복을 주실 수 있고 자신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입증하실 수 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고 오직 하나님을 의존할 때 능력을 받는다.


또한 사도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다.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모든 왕들과 모든 주들은 하나님 앞에서 왕이 아니며 주가 아니다. 모든 왕들은 아무리 잘 다스려도 하나님처럼 다스릴 수 없고, 모든 주들은 아무리 잘 통치해도 하나님처럼 통치할 수 없다. 하나님의 왕권과 주권만이 영원과 시간에서 그리고 초월과 내재에서 완벽하게 유효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을 때 모든 것은 안전하고 안정된다. 하나님의 왕권과 주권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가 파멸의 길이며 패망의 삶이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죽지 아니함을 가지신 유일한 분이며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두 가지 “안 됨”이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는 죽는 것이 안 된다. 하나님은 죽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영원한 자존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만 진정한 생명이 있고, 하나님이 관련하는 모든 것은 생명을 얻는다.

둘째로 하나님께는 접근하는 것이 안 된다. 누구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최상의 광명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장 밝은 빛을 소유하고 계시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과 관련할 때 빛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두 가지 “못함”이 있다. 첫째는 과거와 이전에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이고, 둘째는 현재와 미래에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실 때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하나님 모습 그리기 쉽지 않아

성경 이상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을 묘사하지는 못할망정, 이미 알려진 설명마저 도외시하다니, 그게 말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