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철목사

회복의 목회(2)

새벽지기1 2017. 4. 18. 06:38


2. 교회 주인의 회복

나는 모태신자로 태어났다. 그리고 비록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을 망정, 25세 때에 서리 집사로 임명을 받았다. 약 300여 명이 출석하던 작은 교회에서였다. 29세가 되어서는 이사 간 동네의 교회로 교적을 옮겼고, 당시 1,500여 명이 출석하던 그 교회에서는 여러해 동안 제직으로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37세 때 신대원에 입학하여 2학년 되던 해부터 3년 동안, 교인 수가 20,000명이 넘는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봉사하였다. 말하자면 내가 목회를 시작하기 전 나는 한국의 소형·중형·대형 교회를 모두 경험했던 것이다.

그 세 교회 사이에는 규모와 수준, 위치와 여건상 엄청난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교인석과 커튼 너머의 뒤쪽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교인석에 앉아 예배드릴 때는 은혜로웠다. 어김없이 주님의 교회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일단 커튼을 열고 교회 뒤쪽으로 가면, 그 곳은 교인석과는 너무나 판이하였다. 그 곳으 주인은 목사나 장로 혹은 그 교회의 유력자였다. 교회라기보다는 대기업의 중역실과 흡사하였다. 은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일 수가 없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역사란, 분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단 없는 분열로 점철되어 왔다. 교단은 교단대로 지교회는 지교회대로 끊임없이 분열해 왔다. 그 분열의 주된 원인은 사람이 교단이나 교회의 주인 되려 하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성경에서 최초로 교회라는 단어를 언급하실 때, 교회의 주인이 누구이어야 하는지를 아무도 오해할 수 없는 분명한 말씀으로 밝혀 주셨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니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5-18).

주님께서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로 믿는다는 인간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모든 교회를 ‘내 교회’, 즉‘주님의 교회’임을 명확히 하셨다. 다시 말해 이 땅의 모든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뿐이심을 천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주인 노릇 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의 명칭이 어떠하건 상관없이, 그것은 단순한 인간의 집단일 뿐 결코 주님의 교회일 수가 없다. 스스로 주인 되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이 땅의 교회에 분란이 그치지 않음은, 주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실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원칙이 망각되고 있음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 교회 제도가 낳은 부작용일 것이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치고 어떤 교회가 사람을 주인으로 삼기 위하여 세워졌겠는가? 모든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졌을 것이다. 교회 창립의 도구로 쓰임 받은 자들은 목사 장로 할 것 없이 모두, 오직 주님만을 주인으로 섬기려는 진실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70세가 될 때까지 한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로 시무한 다음에도, 죽을 때까지 원로목사 원로장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 제도하에서는, 교회는 어쩔 수 없이 특정인간의 교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미의 교회들이 원로목사나 원로장로를 인정치 않고, 일정한 기간마다 오히려 목사와 장로의 재신임을 묻거나, 퇴임한 목사로 하여금 교회와 일정한 거리 밖에서 살도록 제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교회는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특정인간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의 교회가 될 수밖에 없을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신교가 카톨릭의 도그마 중에서 수용할 수 없는 거 중의 하나가 교황의 무오류성이다. 카톨릭의 교황으로 한번 선출되기만 하면, 그의 임기는 그가 죽어야만 끝난다. 한 마디로 교황은 종신제인 것이다. 그런데 교황으로 선출된 자는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카톨릭은 절대신조로 삼고 있다. 그가 내리는 결정, 그의 모든 말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이 도그마에 대한 비판이나 새로운 해석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지난 2,000년 동안 교황이 얼마나 많은 실수와 독선과 잘못을 범해 왔는지, 이미 역사적으로 밝히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독일 신부 한스 큉은, 교황의 무오류성을 비판했다는 죄목으로 1979년 카톨릭으로부터 파문당하고 말았다.

한 인간이 단지 교황이란 직책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오류도 범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엄청난 오류인가? 그렇기에 카톨릭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개신교도들의 눈에 카톨릭은 주님의 교회이기보다는 교황의 교회로 더 많이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가 죽을 때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한국 교회 역시 똑같은 오류를 범치 않을 수 없다. 목사나 장로가 죽을 때까지 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류를 교회제도가 정당화시켜 주고 있다면, 그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건 인간의 교회 이상일 수가 없다. 주님의 교회가 될래야 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교회가 이처럼 인간의 교회화될 수밖에 없는 제도 속에서, 주님께서 주인 되신 진정한 주님의 교회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제도를 바르게 잡아야만 했다. 주님의교회가 목사를 비롯한 임직자들의 임기제를 실행하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전혀 뜻하지 않게 교회를 개척하는 임무를 주님께로부터 받았을 때, 이미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인해, ‘내가 주님을 위햐여 감당해야 할 최선의 임무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교회의 주인 되시게 하는 것’이라 규정하였다. 주님께서 주인 되시지 않는 교회라면 그런 교회를 위해 내 인생을 바칠 까닭도 없고, 또 그것은 나 자신의 파멸을 의미하기도 했다. 먼저 교회의 이름을, 주위에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교회’라 지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주님께서 주인 되심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 다음 실행한 것이 임기제였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라고 해서 사람의 교회로 전락치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욱이 나 자신이 누구보다 허물 많은 사람임에야 두말 해 무엇 하겠는가?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단지 개척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적인 야망을 이기지 못하여 죽을 때가지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도대체 교회의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제일 먼저 나 자신의 임기를 스스로 정하였다.

5년, 10년, 15년―이 세 안을 놓고 오래도록 생각하였다. 개척교회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5년은 너무 짧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칫 교회가 교회로서 뿌리도 내리기 전에 목사가 교체된다면, 교회에 득보다는 실이 더 많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반면에 15년은 너무 길었다. 15년이란 기간은, 인간이 무의식중에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을 만큼 과한 기간으로 여겨졌다. 결국 남은 것은 10년이었다. 나는 나의 임기를 10년이 되는 1998년 6월 셋째 주일 사임키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나 자신의 결정을 밝혔다. 목사인 내가 내 자신은 임기를 먼저 정하고 발표하였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장로 임기 제정도 제안할 수사 있었다.

1990년 10월 둘째 주일에는, 주님의교회 창립 이후 처음으로 장로 임직식이 예정된 날이었다. 소망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던 이재원 장로님은 취임식을, 그리고 주님의교회에서 피택된 김도묵·홍근용 집사님은 장립식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 한 달전인 9월 초 예비 당회를 열었다. 그리고 주님의교회 제1기 장로가 될 세 분에게 장로 임기 제정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그분들에 대한 내 사랑의 발로이기도 했다. 주님의 신비스런 섭리 속에서 서로 만나 주님의 교회를 개척하는 도구로 더불어 쓰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가? 그렇다면 그분들이 부지중에라도 교회의 주인 되려는 우를 범치 않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내게 있었다. 그분들이나 나나, 모두 변함없이 주님의 종으로만 존재해야 했다. 나는 세 분에게 장로의 임기를, 안식년을 포함하여 13년으로 할 것을 제의하였다. 장로의 임기를 목사인 나의 임기 10년보다 3년이나 길게 잡은 것은, 목사와 장로의 임기가 같이 끝날 경우에 있을 수 있는 혼란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쉽게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과정을 거듭한 후에, 세 분은 나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제1기 장로 세 분과 초대목사인 나 자신에게만 임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교회가 존속하는 한 모든 당회원들에 대하여 임기제를 실시할 것을 1991년 8월 제직회에서 공식적으로 결의하였다. 즉 담임목사의 임기는 안식년을 포함하여 10년, 장로의 임기는 안식년을 포함하여 13년, 부목사의 임기는 안식년을 포함하여 7년으로 제정하였다. 담임목사와 부목사는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교회를 떠나며, 장로는 이기 후에는 백의종군키로 하였다. 임기도중 정년이 되어 은퇴하는 장로는 ‘은퇴장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장로는 ‘퇴임장로’로 호칭키로 했다. 이로써 주님의교회에는 원로목사나 원로장로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장로들에게도 13년 임기 중 반드시 1년의 안식년을 의무적으로 갖도록 한 것은, 1년 동안 다른 교회도 탐방해 보면서 자기충전과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근자에 와서 장로의 임기가 너무 길다는 비판적인 이야기를 가끔 듣곤 했다. 지금으로서는 얼마든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8년 전 목사와 장로의 임기를 스스로 정한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 당시 한국 교회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 결정 자체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그분들이 끝내 자신들의 임기 제정을 반대하고, 주님의교회 제1기 장로로서 원로장로로 남기를 탐했다면, 다른 교회 교인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임기제 실시를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고, 주님의교회는 이미 사람의 교회로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 때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던 1기 장로님 세 분께 지금도 감사를 드린다.

교회의 연륜이 쌓여 가면서 당회원들에 대한 임기제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회원들에게 임기가 있음에 반하여, 똑같이 교인들에 의하여 선출되는 안수 집사와 권사에게 임기가 없음은 합당하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당회는 6개월 동안의 거듭된 숙고 끝에 1996년 5월, 안수 집사와 권사의 임기를 안식년 유무에 상관없이 각각 10년과 12년으로 제정하고 소급 적용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주님의교회에서는 선출직인 모든 항존직 임직자에 대하여 임기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인간이 부지중에 교회의 주인 되는 우를 평생 범치 않을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이미 10년의 임기를 끝내고 퇴임한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건대, 이것 역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었다. 이 임기제야말로 주님을 언제나 주인으로 모셔야 할 우리 스스로를 지켜 주는 주님의 손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 한, 주님의교회가 설령 한순간 실족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곧 주님의 교회로 회복될 것이다.

인간이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의 자리에 부지중에라도 앉지 않기 위하여, 장로와 목사의 이름을 매주 주보 앞면에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 주보에는 순서 맡은 사람의 이름만 밝혔다. 주보를 통해서도 주님만 주인이심을 고백하기 위함었다.

90년 안수를 받고 첫 당회를 가지기 직전이었다. 당회에서 가장 어른인 이재원 장로님이, 가능하면 당회에서는 가부를 표결에 붙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당회가 모든 것을 표결에 의존하면 은혜를 상실하고 분열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이 장로님의 그 말은 여러 면에서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당회를 주재하면서 그 어떤 안건이든 단 한 번도 표결에 붙여 본 적이 없다. 당회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으면 결정을 그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래서 당회원의 뜻이 한데 모아지기를 기다렸다. 당회의 주인은 주님이시기에, 주인이신 주님께서 어느 당회원을 통하여 무슨 뜻을 펼치실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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