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새벽지기1 2017. 2. 24. 22:53


샬롬! 찬미예수


형님!


우리 가정에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부부가 도수, 정희 선교사를 통하여 연결되었는데

도스트옙프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에 대한 석사 논문을 고려대에서 마치고

러시아에서 유학하면서 푸시킨 연구소에서 몇 권의 귀한 책들을 번역 및 저술한 분들입니다.

이호림, 허선화 집사 부부입니다. 입양한 딸 다희(초등 4년)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주로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어서 아무래도 저들의 문학 작품 속에는

성경의 텍스트가 자리잡고, 삶의 자리에 농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여 러시아 문학을 접하거나 그에 관한 논문이나 책들을 출간하려면 기본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신학적 역량이 적잖이 축적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저도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제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암송하던 푸시킨의 시를 이참에 영어로 암송하게 됩니다.

대학교 때, 문학 작품, 철학 책 등 지성의 겉 멋이 들어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졸면서 읽어내던 책들이 제법 됩니다.

그 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면 젊음을 몸으로만 때우는 더 무식한 놈이 될 뻔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런 노력을 기울인 탓에 후천적으로 문학적 철학적 성향이 고스란히 지금도 배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성향이 있었기에 다만 후에 개발되어 나타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시를 쓰는 시인들의 마인드와 목사들의 마인드가 다를 수가 없고 닮은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가 말을 걸어오기에 시인들은 시를 쓴답니다. 

목사들도 말씀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레마의 말씀으로 다가올 때 감동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이치일 것입니다.

목회자의 말이나 글은 더더욱 그리스도의 피묻은 글이나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진실된 글이나 메시지가 되어야 하고 진솔한 고백적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명예와 물질에의 탐욕과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그러기에 현실 속에서는 저들의 삶이 불편하고 구차하기까지 합니다.

목회자의 삶도 비슷합니다.

목회자도 구도자의 삶이 결여되고 날마다의 성찰 없이는 진실과, 진리 없는 짝퉁의 삶이 되기 쉽습니다.  

늘 깜량도 못 되고 함량부족의 사람임을 고백할 뿐입니다.   


이번 주에는 오후 예배를 마치고 공주 금강 변 예술인의 집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서 장로 부부가 대접을 하기로 하여 도수 선교사 부부와 저희와 그리고 이호림 집사 부부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형님이 함께 동석해야 제격인데 아쉽습니다.

  

내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밤입니다.

저에게는 더욱 경험하지 않은 일을 하나 더 행하게 되지요. 


이틀 전에는 동료 목사 장모께서 이 땅에서의 88세의 일생을 다하시고 떠나가심으로 조문하였는데

이어 처남이 당뇨병 합병증으로 3일 후에 떠나는 일로 겹장례가 치루어지는 일도 발생하더군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남편과 아내가 되고, 부부가 되고, 아빠 엄마가 되는 이치가 신비합니다.

이후 어린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자라 다시 부모님들의 세대에 들어설 때 부모님들은 세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한 우리들도 그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어린 생명의 탄생, 할비가 되는 인생, 그 어간에 아직 남아 있을 자녀의 혼사에 또 다시 참여합니다.  

그만큼 세월은 저만치 비껴갑니다.


내일 굳이 형님을 뵙겠네요.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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