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종교와 정치 간의 은밀한 거래, 정경유착으로 인한 금권정치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하고, 현세와 내세를 분리하고, 하늘과 땅을 분리하는 등
이원론에 근거한 절대적 분리로 보는 전통적인 시각이 있다.
이 세상의 문화에 대하여 취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관점도 다양하다.
그러나 국가와 교회가 서로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 세상에서 공존하는 한 사실상 완전하게 분리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상대적 분리로 이해해야 한다.
정치를 정의의 가치와 연결하여 볼 때 그동안 교회 내에서 논쟁되었던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복종과 저항'은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는 정의를 실현하려는 하나님의 도구이므로, 정부가 정의의 가치를 멀리할 경우 우리는 광장에 나가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예언자적 목소리라는 것은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기독교적 정치 원리가 억압될 경우 그것을 폭로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성경적 사례를 얼마든지 살필 수 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 전락한 역사적 고난과 질곡의 삶을 살고 있을 때,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바로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고 두려워한 산파들의 모습들과 우리야의 아내를 간음했던 일로 다윗왕을 꾸짖는 나단 선지자,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흘러야 한다고 외친 아모스
악한 일을 행한 분봉 왕 헤롯을 비판한 세례요한 등은 정의를 행하지 못하는 통치자들에게 저항했던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이 예언자들이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은 백성이나 임금을 가차 없이 비판한 점이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의 예언자들은 사회정의를 위하여 예리한 비판을 하였고 예레미야, 에스겔 등 모든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자들을 질책하며 심판을 예고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에 의거한 구원의 소망을 전파하였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정치적 발언처럼 여겨지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막12:17)는 말씀도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왕국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이 아닌 영적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정치적 왕국 안에서 살고, 일하고, 죽으므로 정치적 왕국 안에서 핍박을 각오해야하며, 신앙에 충실하여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 현황에서 보면 각각의 자기 종교적 색채를 그대로 드러내며 정당 정치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기독교, 통일교, 불교 등에서 대선을 통해 정당 가입과 활동을 꾀하고 있다. 지난 몇 차례의 대선을 치르는 동안에도 기독교를 표면에 내세워 집단 이기주의로 가득한 공약을 제시하며 일부 자신들의 탐욕을 일구는 정치꾼과 같은 움직임이 있었다.
기독교가 종교적인 협소한 가치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공명 등 보편적인 선을 기초로 비기독교인도 공감할 수 있는 정당, 또는 무조건적인 권력 획득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종교적 정치 활동은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다만 기독당이라는 기치를 걸고 '정의'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유폐시키는 모순을 낳는 정치적 활동은 위험하고 건강하지 못하다.
한국의 기독교인은 타종교에 대한 반감이 커서 그런지 기독교인 정치가를 더 선호하고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한국교회의 정치적 보수주의와 맞물리면서 여당에서 교회의 장로가 출마할 경우 일종의 '장로 대통령 만들기' 현상으로 이어진다. 한국교회사에서 이러한 현상은 역사 속에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등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한국 교회가 중요한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기독교 정당과 장로 대통령들처럼 하나님을 다만 우리만의 하나님으로 가두고 우리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박하고 이기적인 자화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국 기독교가 범했던 과오는 교회가 교회 자체에만 갇혀 자기 생존과 확장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제도화된 교회 조직이 살아남고 성장할 수만 있다면 국가의 통치자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기독교는 불의한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맡아 왔었고, 인력 동원 기구로 전락하였다.
앞으로 맞는 선거에도 이기적인 프레임에 갇혀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되고 '우리'의 하나님을 해방시켜
'정의'의 모든 인류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폭넓은 기독교적 가치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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