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49) 낭비조장문화

새벽지기1 2016. 11. 22. 06:28

다음세대 위한 돌봄과 보존은 사명
 

  
 

학생들은 제 전화기를 구석기시대 유물로 취급합니다. 망가지지 않는다면 주님 오실 날까지 쓸 작정이라 했더니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물론 진담이었습니다.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까요. 문제는 공짜로 바꿔주겠다는 전화회사들의 성화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데 이젠 번호만 봐도 무슨 전화인지 알아차릴 정도입니다.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

요즘은 온통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가 유행입니다. 소프트웨어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만 고치면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갑니다. 대중매체들은 멀쩡한 물건을 최신 것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광고투성이 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세르주 라투슈는 <낭비사회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무엇이건 오래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진부화’를 비판합니다. 진부화는 첫째, LCD 모니터가 브라운관을 대체되는 것 같은 기술발전에 의한 것입니다. 둘째, 유행이 지나거나 흔해져 진부해지는 경우가 진짜 문제라고 했습니다. 제품의 기능은 별로 다르지 않은데 자동차처럼 연식이 바뀌고 디자인이 바뀌면서 심리적으로 처지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셋째, 아예 제품의 수명을 오래 가지 않게 기술적으로 조작하는 ‘계획적 진부화의 광기’입니다. 프린터 중에는 출력매수가 일정 단계를 넘으면 인쇄가 안되도록 칩을 설정한 경우도 있었답니다. 라투슈는 이런 조작에 대해 “무엇을 사든 고장이 보장됩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런 ‘진부화’는 소비자가 전혀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넓게 퍼져있다고 합니다. 저도 보상수리를 해주던 텔레비전 서비스 기사가 요즘 제품은 과거처럼 수십 년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바람에 놀라 분노했던 적이 있습니다.
 

쓰레기 양산

계획적이던 아니던 낭비를 조장하는 문화는 쓰레기 양산과 환경오염과 파괴를 낳습니다. 일회용품은 수명을 단축시킨 제품의 극치입니다. 일회용품에 길들여진 삶은 결국 인간마저 일회용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모든 것을 유통기간이 정해진 소모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신뢰와 헌신은 헌신짝처럼 되어 갑니다. 이혼과 이직률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삽니다. 이사 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가진 것이 많습니다. 이토록 풍족한 삶 속에서도 계속 뭔가를 사게 되는 것은 낭비조장 문화에 물든 탓입니다. 광고는 한시도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고 뭔가를 사라고 졸라댑니다. 인터넷 쇼핑과 홈쇼핑 같이 24시간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물품을 살 수 있는, 너무 구매가 쉬워진 것도 낭비에 크게 일조하고 있습니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외쳐대는 문화는 근검절약 정신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몰아갑니다. 무엇이나 귀히 여기지 않고 일회용으로 폐기하는 사회와 문화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근검절약 정신

오늘의 자본주의는 소비를 부추겨 생산을 늘려야만 존속할 수 있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때 10%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터라 지금 4%의 성장을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물론 발전과 성장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조장해서 생산을 늘리고 그로 인한 성장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런 생활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대안은 명백합니다. 전통적인 근검절약입니다. 앞서 언급한 라투슈는 탈성장주의를 주장합니다. 성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성장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 유일한 경제방식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적인 자족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문화며 기술은 모두 인간이 잘 살기 위한 것인 만큼 인간 본연의 삶이 유지되도록 하는 삶의 방식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풍요와 만족은 꼭 가진 것이 늘 새롭고 다양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결핍증은 영적 결핍의 증상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문화의 청지기로서 세계를 지혜롭고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낭비조장 문화로 아름다움은 바래고 자원은 고갈되고 있습니다. 삶을 단순화해 교체보다는 수리해 쓰고 재활용하는 것이 바른 청지기적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꾸고 돌보라고 명령하신 창조세계는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어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까지 다음세대를 위한 보전의 돌봄과 가꿈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세상을 온통 쓰레기장이나 폐허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날과 같은 낭비를 조장하는 문화를 거슬러 사는 태도를 익혀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