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03)

새벽지기1 2016. 8. 13. 07:26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땅, 사람들 및 살아있는 모든 것은 함께 묶여져 있다, 특히 심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호 4:3).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때부터 그러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죄를 짓자 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일이 창조적 에너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힘들게 하는 괴로운 것이 되었다(창 3:17-9). 사람의 삶과 땅의 연계는 인류가 처음으로 저지른 살인 행위에서 나타난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아벨의 피가 땅에서 소리치고 있었다(창 4:10-12).


사람과 자연의 상호 관계는 심판의 경우를 넘어 보통의 삶에서도 안식하는 쉼을 통해 알 수 있다. 창조 기사의 절정은 인간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쉼’이다. 그 쉼은 창조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창조 사역은 남자와 여자 및 동물을 넘어 땅 자체를 창조하신 것에까지 이른다(레 25:5).  


사람과 다른 모든 피조물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시편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시편 104편은 사람이 다른 모든 피조물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고 노래한다. 사람과 다른 피조물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시편 104:14-15).


이러한 선물들은 사람에게만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란다(104:27). 하나님께서 넉넉히 베풀어주시는 대상은 모든 피조물에까지 이른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그러나 우주는 좌절과 파괴에 이르게 되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 3:19).


하지만 창조를 기술할 때 성경은 과거나 현재를 넘어가는 실재를 증거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억압 받고 있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일으킬 때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사 55:11-12, 66:22-23, 롬 8:21). 그 곳에는 우주가 조화를 이루고 더 이상 죽이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 희망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되는  관점에서 표현된다.


창조나 구원을 과거, 현재 혹은 미래 등 어느 관점에서 보든지 다른 피조물은 사람과의 관계는 별 문제로 하고서라도 하나님 앞에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시편 8장 6절부터 8절까지는 기록한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 1장 28절은 기록하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리고 레위기 11장은 깨끗한 동물과 깨끗하지 않은 동물이 있는데 깨끗한 동물만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 30절에 따르면, 사람과 동물은 식물을 지배할 수 있다. 하나님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게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셨다. 이러한 성경적 기록은 피조물의 구조에 어떤 위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계속>  

출처.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