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지난주에 이어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묵상의 글을 씁니다.
과연 지옥은 공간과 장소로서의 개념으로서 실제로 존재하는 곳일까?
아니면 단지 하나님 분노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곳을 비유하는 걸까?
우리 중 건전한 성경적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국 개념이 장소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시행되고
그분의 백성으로서의 영적 깊은 교제와 연합이 이루어지는 영생 복락을 누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굳이 장소 개념으로 말하고 싶다면 그곳이 하늘이든, 하늘의 위 은하계든, 땅이든, 땅 속 어디든,
심지어는 공중이든, 하늘과 하늘의 그 어디인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을 곳이 어디이겠는가?
그렇듯 지옥의 개념에 있어서는 너무 장소적인 것에만 경도되어 우리의 사고를 한 뼘도 넓히지 못한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상세하고 깊이 있게 말하지는 않았다.
천국에 대해서는 하나님나라,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 새 하늘과 새 땅, 밤이 없고 슬픔과 눈물과 죽음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고 말하는 정도였고,
지옥에 대해서는 지옥 불,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말하는 정도다.
지옥을 말할 때는 완악한 세대를 겨냥한다.
말해도 듣지 않고, 보여주어도 보려하지 않고, 듣거나 보아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겨냥한 말이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을 원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살아있다 해도 지옥의 삶을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록 우리가 험한 세상에 산다해도 믿음으로 이미 천국을 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상세하고 깊이 있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의 정보를 갖고
천국과 지옥을 이 이상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천국과 지옥은 아직 우리 손 안에 쥐어져 있지 않고, 천국과 지옥을 온전히 경험한 사람 또한 하나도 없다.
물론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체험들이며
성경적으로 검증될 수도 없는 허접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성경이 천국과 지옥 자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있고 또한 학자들마다 입장이 다르다.
그렇다고 개인이 알아서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며,
복음을 말하기 위해 지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서 지옥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다소 억지다.
예수는 '복음' 혹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결코 지옥을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 안에서 지옥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을 전체적으로 녹여보면
하나님의 사랑, 긍휼, 자비와 용서, 회개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언급되고 있을 뿐,
초점은 언제나 구원의 은총과 삶의 회복의 은혜를 총체적으로 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신학적 사색이나 나름의 깊은 생각들이 있지만 이것을 드러내놓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러우나 나의 확신과 소견은 이렇다.
인간의 구원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며,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에 대해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의 대전제다.
더욱이 구원의 선택과 과정과 완성조차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그렇다면 구원에 관한 한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하나님의 열심과 긍휼과 자비가 총동원된 하나님의 지혜의 총화요 영광이요 신비라면 왜 믿지 않고, 믿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그 문제는 인간의 책임으로만 돌리려 하는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의 말씀처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면
믿지 않거나 믿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그 문제 만큼은 이 충족한 하나님의 구원의 영역으로부터 제외 되는 것일까?
그들의 죄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그 상황과 처지보다 더 악한 상황이어서 일까?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학적 교리적 기본적인 선지식를 전제함에도 여전히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참고로 영국의 보수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는 David Edwards와 공저한 책, Evangelical Essentials (IVP, 1998)에서
"하나님은 사랑인데 어찌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공저인 영국의 신학자 데이비드 에드워즈(D. Edwards) 또한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끝까지 발휘하시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많은 사람이 지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그런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차라리 무신론자가 되겠다. 설사 사람들이 자기 죄를 스스로 받아들일 각오를 할지라도 그들의 운명을 지옥으로 정하는 하나님이시라면 정녕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지옥을 부정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어느 교수는 "자신과 동료들은 지옥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거기에서 살지 않게 될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고 말했다(마침내 도래한 하나님나라).
바르트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지옥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옥을 영원히 비워두신다."
나는 이러한 발언들에 대한 지극히 이성적이고 무책임한 쓰레기 같은 사변적 신학을 양산하는 여타의 부류들도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백적 묵상과 고민의 흔적들이라 믿고 싶다. 진실로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용해되어 지옥이 있다하여도 그 지옥은 정말 비워져 있어도 좋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만을 천 만번 빌미로 삼아도 결코 그분의 공의가 왜곡되지 않을 하나님을 궁극적으로 기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정하든 긍정하든 이 세상에는 지옥도 있고 천국도 있다.
우리의 내면과 삶속에도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다.
이 지옥과 천국은 따로 분리되어 있지를 않고 거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한 사람의 마음과 삶속에도 천국과 지옥이 뒤섞여 있고, 세상의 정치와 경제와 교육 속에도 천국과 지옥이 뒤섞여 있다.
천국으로만 가득한 삶도 없고, 지옥으로만 가득한 삶도 없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천국과 지옥이 뒤섞여 있고, 세상 곳곳에 천국과 지옥이 뒤섞여 있다.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피차의 삶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 세상은 천국의 전부이고
믿는 자들에게 이 세상은 지옥의 전부일 뿐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럴 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문제가 남고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의 문제만 남는다.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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