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어거스틴

보다 이르든지 보다 늦든지 인생의 종결에 관하여 / 어거스틴

새벽지기1 2016. 7. 10. 06:31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살해당했고 온갖 종류의 끔찍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라고 저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비록 참아내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살게 된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일이다. 적어도 나는 죽음을 경험한 사람 중에, 언젠가 죽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인생의 종결은 긴 인생을 짧은 것과 같은 상태로 축소시킨 셈이다. 어떤 것이 일단 존재하지 않게 되면 더 이상 더 나은지 더 나쁜지, 더 긴지 더 짧은지는 문제가 안 된다. 일단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통일한 고통을 두 번 겪도록 강요되지 않는데, 그가 어떤 종류의 죽음으로 인생이 종결되든지 무슨 중요성이 있는가?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매일의 삶 가운데 수많은 죽음에 의하여 그런 식으로 위협당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죽음이 자기에게 닥칠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온갖 종류의 죽음을 두려워하느니보다, 한 번 고생하고 죽는 편이 더 낫지 않느냐는 물음이 제기된다. 나는 사람들이 한 번 죽음으로써 모든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느니보다 그에 대한 두려움에 억눌려 사는 편을 당장 선택하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약하고 겁이 많은 육신의 본능적인 위축 현상과, 심사숙고하여 육체의 영향에서 벗어난 정신의 합리적인 확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면, 죽음은 재앙으로 간주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을 좋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죽음 이후에 받게 되는 응보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죽어야 하는 인간들은 어떤 사건으로 죽느냐에 대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염려해야 할 것은 죽음 이후에 다다를 목적지가 어디냐 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개가 헌데를 핥는 가난한 신앙인의 죽음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으나 하나님을 모르는 부자의 죽음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눅16:19이하). 그렇다면 지금까지 훌륭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런 끔찍스런 죽음이 어떤 해를 미칠 수 있었겠는가?

 

- 어거스틴, 『하나님의 도성』, p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