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현 수 박사
평택대학교 부총장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주 되심의 영성
<하나님 형상>
사람이 가진 하나님 형상은 하나님의 선함과 위대함을 인정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인정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한 것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형상이 회복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하는 것이든 차이가 없다.
창세기 1장 25절의 말씀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어거스틴이 하나님 형상을 자아 안에 삼위일체로 구성된다고 보는 것을 배격한다. 칼빈은 하나님 형상과 하나님 모양이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하나님 형상은 육체적 유사성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걸음 나아가, 칼빈은 사람이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 형상의 아주 작은 부분 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하나님 형상이 타락에 의해서 우리 안에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것의 회복을 통해 그것이 본래 어떠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칼빈은 하나님 형상이 주로 머리와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사람이 머리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가슴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 형상 안에 있다. 신명기 4장 10절을 설교하면서 칼빈은 말한다, ‘하나님이 그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신 것은 그의 진리가 우리 안에 빛나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없애거나 파괴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형상을 완전히 손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가면 하나님은 하나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알려지게 하실 것이고, 그의 진리가 우리 안에 더욱 더 빛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어 우리가 하나님을 날조된 우상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받아들이도록, 우리 자신이 진리를 알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확신하도록, 그리고 우리가 담대히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손에서 구조되기를 바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이 보기에 자연 세계에 있는 하나님 형상과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은 아주 비슷한 점이 있다. 두 경우에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 자신에게 반사시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피조물이나 이성이 없는 피조물은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에 반하여, 사람은 하나님께 철저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감사와 겸손으로 이것을 한다. 사람이 이성의 빛을 받은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감사로 하나님께 반사하는 한, 사람은 하나님 형상 안에 있다. 토란스가 지적했듯이, 거울이 칼빈의 사고에 지배적이다, 비록 칼빈이 새겨 넣었다는 비유를 때때로 쓰지만. 거울의 비유는 물론 신약의 권위를 갖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 형상을 사람이 본래 가진 의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는 점에서 루터를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은 신약이 말하는 하나님 형상이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구약의 하나님 형상과 어떻게 관련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칼빈은 직면하고 있다.
이 문제는 ‘하나님 형상은 타락 때 잃어버렸는가?’라는 물음의 형태로 제기된다.
이 물음에 대한 칼빈의 답은 무엇인가? 칼빈은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칼빈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비록 분명치 않은 하나님 형상의 특징이 사람 안에 남아 있지만, 그것은 망가져서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에게 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부분이 없다. 칼빈에 따르면, 창세기 9장 5절부터 7절까지는 사람이 처음에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타락하였어도 여전히 존엄하다는 것을 다룬 것이다.<계속>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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