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55)

새벽지기1 2016. 6. 8. 09:26


칼빈에게는 한 때는 하나님 형상이 없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다른 때에는 그것이 타락으로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역설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이성이나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것 등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이 죄 때문에 나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칼빈은 하나님이 준 것을 말할 때 하나님 형상이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말하나 우리가 공헌하는 것을 말할 때 타락이후 사람에게는 그것이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별을 칼빈의 전적 부패 교리를 다룰 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앞서 살핀 것과 같이, 칼빈은 우리가 지음 받은 것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계속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본다. 이외에도 사람은 누구나 로고스 곧 성자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요한복음 1장 4절과 9절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말한다,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참된 빛이 세상에 오고 있다. 따라서 비록 죄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심어준 이성의 빛을 어둡게 하고 빛나는 몇 가지 광채를 제외한 모든 것이 완전히 꺼져버렸을지라도, 영원한 빛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빛은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에게 비추고 믿음을 일으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를 증거 하는 성령의 빛과 전혀 다르다.


창세기 2장 9절에 대한 주석에서 칼빈은 조금은 다른 강조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명나무가 그리스도를 아담에 비유하는 것이라는 루터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칼빈은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요한복음 첫 장에서 선언된 것 곧 이 땅의 모든 생명이 그 말씀 안에 포함되지만 특히 이성과 지성이 결합된 사람들의 생명이다. 따라서 이 표징을 통해 아담은  그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의 것인 양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를 떠난 그 어떤 곳에서도 생명을 추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났을 때에는 죽음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뒤의 문단을 통해 추론하면 타락 이후 사람은 로고스와 갖는 관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것이 새롭게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칼빈에게는 그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사람 편에서 나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아담에게 준 빛의 본래 목적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를 떠난 그 어떤 곳에서도 생명을 추구하지 않게 함으로써’ 하나님 형상을 반영하게 하는 것이다.  타락 후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빛의 광채는 다른 목적에 쓰인다. 그것은 사람이 지은 죄를 변명하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잃어버린 고결성을 알도록 함으로써 물러설 길이 없게 한다. 


창세기 9장 5절부터 8절까지를 주석하면서 칼빈은 하나님 형상의 잔재가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남아 있는 어떤 신적 빛의 광채에 있다. 이 점에서 칼빈은 어거스틴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요한복음 1장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그는 빛이 모든 사람에게 비친다는 교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말씀과의 관계는 사람이 가진 지식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칼빈은 하나님과 세상을 아는 것의 범위와 효과성에 대해 다른 어떤 신학자보다 더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은 남아 있는 하나님 형상의 불꽃이 타락한 상태에서 확고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재주와 지혜의 다양성에서 우리는 인류를 다른 피조물과 구별시키는 신적 형상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