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54)

새벽지기1 2016. 6. 7. 08:47


사람을 죽인 생명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지 죽여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돌아보는 것은 무모하거나 맹목적이지 않다. 사람은 하나님이 돌볼 가치가 없지만 그에게 새겨진 하나님 형상 때문에 그것이 침해되면 하나님 자신이 공격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자신이 준 선물을 보며, 그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을 기쁘게 여긴다.

일 이러한 하나님 형상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음 두 가지 해결책이 남는다.


첫째, 하나님 형상의 찌꺼기가 있어서 사람은 어떤 존엄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
둘째, 하늘에 계신 창조자가 사람이 아무리 타락했다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본래 창조 목적을 마음에 두고 있고, 자신의 본보기를 따라 무슨 목적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고 사람에게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주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칼빈의 이러한 놀라운 주석에 대해 다음 네 가지를 특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첫째, 사람에게는 존엄성이 있다. 하지만 이 존엄성은 사람이 도덕적인 자랑을 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을 존중해야 할 두 가지 근거가 구별된다. 하나는 사람이 실제로 갖고 있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사람으로서의 존재가 갖는 구조의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계획한 창조의 목적이다. 이것은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속 그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  셋째, 사람의 존엄성의 두 근거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에 대한 실제적 반응으로 묘사될 수 없지만 이러한 선물과 하나님의 목적은 모두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감사의 형태로 나타내는 한, 사람은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이 구절이 말하는 하나님 형상의 요소는 피조물에 공통적인 넒은 뜻의 하나님 형성에 속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칼빈이 여기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다른 피조물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8편 5절의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란 구절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주장하기를, 여기서 시편 기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형성되었고 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바라고 지음 받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뛰어난 재질을 의도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질,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 사람 안에 심어진 신앙의 원리, 어떤 종교적인 속박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이웃과의 교제,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수치감, 법의 통제를 받는 것 등은 모두가 두드러지고도 신성한 지혜를 분명하게 나타낸다.


따라서 다윗이 인류가 영화와 존귀의 관을 쓰게 되었다고 선언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러한 복은 고상한 상태에 속하는 것이다. 비록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수치심과 같은 것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타락으로 사람은 가련하고 부끄러운 결핍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타락의 결과로 다윗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관대함이 멈추었고,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뛰어남과 광채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 형상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지만 타락 때문에 이르게 된 비참한 전도와 파괴 상태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만이 남아 있는가!


이처럼 사람의 본성에 준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시편의 강조를 칼빈이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만 그것에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준다. 시편을 사람의 본래 상태로 있던 때에 속하는 것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이러한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