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칼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 칼빈

새벽지기1 2016. 4. 23. 07:19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서로 관계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두 지식이 상호 연관되는가?

 

1. 먼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먼저, 사고의 방향을 돌이켜 그 안에서 “힘 입어 살며 기동”하고 있는(행17:2) 하나님에 관해 명상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살펴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은사들은 우리들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은 거의 없으며, 사실상 우리의 존재 그 자체도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려주시는 이러한 축복들은 마치 시냇물과 같이 샘의 근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실로 우리가 빈곤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무궁무진한 축복이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무지, 공허, 궁핍, 무력, 더욱더 타락과 부패를 느끼게 됨으로써 우리는 지혜의 참된 빛, 건전한 미덕, 풍성한 선, 의의 순결함이 오직 주 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악에 의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 진정으로 갈망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을 찾도록 우리를 일깨워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손을 이끌어 자신을 발견하도록 인도한다.

 

2.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 그분에 대한 명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검토하지 않는 한, 명백한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명백한 증거에 의하여 우리의 불의, 더러움, 어리석음과 불순함 등을 심각하게 확신하게 되지 않는다면 항상 스스로에게 의롭고 완전하고 현명하고 신성한 것처럼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만은 생래적인 것이다.) 우리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한 그와같은 자기 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이 판단을 심사할 수 있는 유일한 표준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덜 더러운 것은 마치 그것이 가장 순결한 것처럼 우리를 즐겁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검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눈에는 희끄무레한 색이나 거무스레한 색마저도 아주 흰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우리 영혼이 얼마나 속는가는 우리 육체의 감각이 속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대낮에 땅 위를 내려다 보거나 혹은 사물들을 본다면 아주 강하고 예리한 시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태양을 올려다 보고 이를 똑바로 응시한다면 땅을 볼 때 그렇게 좋았던 시력은 태양 광채 때문에 눈이 부셔 혼미해지고 아주 흐려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의 영적 은사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의 의, 지혜, 능력에 아주 만족을 느끼면서 이 세상 넘어 저 속을 바라보지 않는 한, 우리는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추켜올려서 자신을 반신적(半神的)인 존재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단 생각을 하나님께 올려 생각하기 시작하고 그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그분의 의와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완전한가를 생각해 보자. 그분은 우리가 바라보고 닮아가야 할 모범이다. 그러면 전에 의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안에서 즐거워하던 것이 곧 가장 사악하고 추한 것으로 변할 것이다. 또 지혜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그렇게 감동시켰던 것이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써 역겨워질 것이다. 능력의 모습을 띠었던 것은 스스로 가장 비참하게도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에게 가장 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하나님의 순결에 비하면 불완전한 것이다.

 

3.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의 인간

 

성경이 보편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마다 언제나 충격을 받고 압도 당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그 두려움과 놀람은 바로 여기서부터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모를 때는 굳건히 그리고 꿋꿋하게 서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죽음의 공포에 의해 전율하고 경악하여 비참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혼비백산이 된다.

 

결국 인간들은 하나님의 위엄과 자신들을 비교해 보기 전에는 결코 자신의 비천함을 자각하고 깊이 감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이렇게 두려운 일이다(왕상19:13, 호렙산의 엘리야). 그룹들까지 두려움으로 떨고 그들의 얼굴을 가리웠는데(사6:2) 하물며 부패하고(욥13:28) 벌레에 지니지 않는(욥7:5,시22:6) 인간들이야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에 대하여 이사야는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고-- ”(사24;23)라고 말한다. 즉 그가 빛을 발할 때는 광채가 빛나며 더 가까이 가서 보면 이전에 가장 빛이 나던 것들도 그 앞에서는 캄캄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사2:10,19).

 

- 존 칼빈, 「기독교강요(영한)」, 1권, pp 6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