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지성을 조화시킨 목회자
요나단 에드워즈의 저술 중에서 저자의 특징적 사상을 가장 잘 제시하는 작품은 43세 때 쓴 『신앙과 정서』(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1746)이다. 본 저서는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는 데, 제 1부에서는 정서들의 본질과 신앙에 있어서 그러한 정서들의 중요성을, 제 2부에서는 진정한 은혜에 의해서 오는 신앙적 정서의 진위는 무엇으로 가려지는지, 제 3부에서는 진정으로 은혜롭고 거룩한 정서들을 구분하는 표식들은 무엇일까를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저술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최선을 다해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분간하여 그 분별력을 정립하고 확정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신앙의 대부흥들이 단순한 일과성 현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운 작용들'의 본질과 표지들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열정적인 영적 정서와 깊은 지성을 균형있게 조화시킨 에드워즈는 설교에 있어서 정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 누구보다도 확실히 인식했다. 그 정서란 오성으로 인한 깨달음(Understand)과 실천으로의 의지(Will) 사이에 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 깨달음은 나아가서 인간을 감동시켜야 하며, 감동을 받을 때 사람들은 의지를 가지고 행위에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머리를, 감동은 가슴을 그리고 의지는 사람들의 손과 발을 요구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설교에 있어서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신앙의 주도적이고, 본질적 좌소가 바로 마음이기에,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설교, 그리고 의지의 결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끝나는 설교는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을 제시하지 못하는 공허한 지적 전달로 결코 바람직한 성도의 삶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에드워즈는 흔하게 일어나는 무분별한 인위적 감정의 문제점들을 강렬한 어조로 지적한다. 이러한 인위적 감정은 성령이 함께 하는 진정한 바람직한 정서와 구별이 된다.
에드워즈는 성경에서 가장 잘 거룩한 정서를 보여주는 인물로서 구약의 다윗 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기도 한다: "첫 번째로 주목할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시편을 통해서 자기 신앙의 생생한 모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 놓은 그의 거룩한 노래들은 다름 아닌 경건하고 거룩한 정서들의 표현이요, 속삭임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대한 겸비하고 뜨거운 사람이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하심과 놀라운 행사들에 대한 찬탄이요, 하나님을 향하여 영혼이 간절하게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즐거움과 기쁨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위대한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총과 충분성과 신실하심 안에서 영혼이 거룩하게 승화되고 승리한 것의 표현이요, 성도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즐거움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정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가까이 접근하려는 성향과 싫어하며 멀어지려는 성향이다. 전자에 해당되는 바로는 사랑, 기쁨, 소망 등의 감정이며, 후자에 해당되는 것들로는 죄에 대한 혐오감과 미움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거룩한 감정들이 일어나는 설교를 에드워즈는 행했고, 강조하였다. 그러기에 에드워즈야말로 열정적인 경건과 심오하고 통합된 지성을 명료하게 조화시킨 탁월한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기꺼이 평가를 받는다(D.M.Lloyd-Jones).(97.7.7.Seoul)
-『성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
일반적으로 에드워즈의 설교와 강의는 시대적으로 셋으로 나누어 이해되고 있다. 첫째로, 1720-23년으로 그의 예일대학교 졸업 이후 뉴욕 장로교에서의 사역시절 그리고 예일대학교 강사시절에 행해진 것들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것들로는 '기독교인의 행복', '영광스러운 은혜', '사악한 사람의 죄의 노예'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로, 그 다음은 1726-50년까지인데, 그의 노쓰햄톤에서의 23년간의 목회 중에 행해진 것들이다. 대표적인 설교들로서는 고린도 전서 13장에 관한 16회의 설교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장례식 설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쓰햄톤 교회를 떠나면서 행했던 '고별설교'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로, 마지막으로 분류되는 설교와 강의로는 1750-57년에 행해진 설교로서 스탁브리지에서 인디안 선교사로서 행해진 것들이다. 아울러 짧은 기간이지만 예일대학교의 총장으로서 행해진 것들도 포함된다.
그러한 설교와 강의 가운데서 에드워즈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두드러지는 역사적 명성을 누리게 하는 작품은 다름 아닌 그의 설교 「성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을 우선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설교의 한 부분을 들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설교의 제목과 직접적 관련이 되는 대목을 들추어 낼 것이다:
"육적인 자들은 지옥 구덩이 위에서 하나님의 손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불타오르는 구덩이에 들어가야 할 마땅한 자들이며, 그러한 판결은 이미 선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준엄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해 실제로 지옥에서 모진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을 향하신 분노만큼이나 큼니다. 그들은 그 하나님의 분노를 조금도 누구러 뜨리거나 진정시킬 수가 없습니다. 악마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삼킬듯한 불꽃은 그들을 집어 삼키고야 말 것입니다. 그 불꽃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으며, 그들은 어떠한 중보자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순간순간들은 하나님의 뜻과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의무에 구속되지 않는 몹시 분노하신 하나님의 인내에 의한 것입니다."
이 설교는 38세의 에드워즈 목사가 1741년 7월 8일 미국의 엔필드(Enfield)에서 선포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 Movement)의 중앙에서 행해진 설교로서, 당시 이 설교를 들은 수 많은 회중들에게서 통곡과 눈물이 함께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에드워즈가 메사추세츠주의 노쓰햄톤에서 주목할만한 목회를 시작한지 벌써 14년이 되는 해였다. 대각성운동이 1734년 에드워즈의 탁월한 영적 설교에 의해서 시작된 지 벌써 7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이러한 영적으로 성숙한 분위기와 에드워즈의 개인적 영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뜨겁게 선포되어진 설교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그 무언가 역사적 작품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합작품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생각해 본다. 물론 무엇보다도 그 설교의 주인 되신 성령 하나님의 강렬한 역사가 함께 해야 함을 우리는 기억한다.
특기한 점은 2000년 교회사 가운데 이 설교처럼 하나의 설교가 명성을 떨친 경우는 처음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독교 역사상 사도시대 이후 가장 뛰어난 설교자"(John H. Gerstner)로서 불리 우는 에드워즈의 이 설교는 그의 설교 가운데 최고의 설교이면서 동시에 그 어느 누구의 설교보다도 감동적인 위대한 설교로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설교에 대하여 "너무 강렬하고 충격적이다"는 혹독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이 보다 더욱 진리의 빛을 비추어서 그들의 진상에 의해서 두려워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잘한 정당한 일입니다"라는 에드워즈의 답변에는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9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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