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신앙고백의 시금석들 (엡1:15-16 ) /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5. 10. 29. 12:51

 

   우리는 성경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대목 중 하나인 1:3-14을 오랫동안 숙고해 왔습니다. 첫 부분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지는 하늘에 속한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영광스럽게 묘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한 묘사입니다. 우리를 예정하시고, 구속하시고, 그리고 믿게 하시며 성령으로 인치셨다 그렇게 요약이 되겠습니다. 바울은 이제 15절에 이르러서 새로운 대목을 시작합니다. 시작하면서 “이를 인하여(wherefore)"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앞 부분과 이제 말하고자 하는 대목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명시하였습니다.

 

   15절 이하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첫 대목에서 말한 그 신령한 복들을 에베소 교인들도 누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참다운 그리스도인일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영적 지위에 있고, 동일한 복락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 보다 그리스도인들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1.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바울은 수신인인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그렇게 확신하며 그렇게 감사를 끊이지 않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내가 듣고”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믿음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며 바울이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회심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좀 더 정확하게 질문을 해 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 대해서 들었는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을까요? 이 말은 우리들에게 적용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How do we know we are Christians?)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근거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며,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식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마치 자신에게 중병이 있을까 두려워서 건강 검진을 받으려 가기 꺼리는 사람들처럼 , 어쩌면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 조차도 겁이 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우리가 참되고 견고한 확신을 가지려면, 우리는 어떤 유효한 테스트 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본문 15절에서 그 테스트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잡한 기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 두 가지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다른 성도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믿음과 행함, 두 가지입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2:20)고 말씀합니다. The proof of true faith is that it shows itself in action. 


2. 주 예수 안에서의 믿음(your faith in the Lord Jesus)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판별할 수 있는 첫 번째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주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첫째로 무엇보다도 주 예수를 믿는 자입니다. 행위나 행동을 우선적인 기준으로 내세우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지만 예수님 안에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종교를 섬기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믿으니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요즘 종교다원주의에서는 그리스도 중심적이 되지 말고 신중심적으로 이야기해보자 그럽니다. 그리스도가 종교 대화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금석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가졌느냐고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법없이도 살고, 저 정도로 사람이 착하면 천국가고도 남겠다 싶은 사람들에 대하여 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주 예수를 믿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보며,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것 되시며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이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오셨다는 뜻이며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만 구원을 얻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수단은 그 분 자신과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란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나의 모든 소망을 그리스도께 의탁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에 모든 기대를 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는 내 자신의 삶을 신뢰하지 않으며 내 자신의 행동도 전혀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주님의 피와 의는/ 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두루마기일세/ 불타는 세상에서 이 옷 차려입고/ 기쁨으로 내 얼굴을 들으오리라(Count von Zinzendorf)

 

  바울은 예수 안의 믿음이라 하지 아니하고 주 예수 안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시자,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영광의 주요 영원한 본체되는 분이요 복되신 삼위일체의 제2격위에 해당하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울이 말한 바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12:3). 이것은 자연인은 믿을 수 없는 신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그냥 목수, 선생 혹은 성인 정도로 인식할 뿐입니다. 그가 영광의 주님인줄 몰랐기에 세상의 관원들은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고전2:8).

 

  주와 예수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구주를 먼저 믿고 나중에 주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한 분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 대속물로 죽으시사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신 구세주를 믿음과 동시에 우리 삶의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참 인간이신 예수님과 동시에 참 하나님이신 주님을 믿습니다. 결코 분리할 수 없습니다. 


3.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love unot all the saints)


  본질상 자연인은 서로 미워합니다(딛3:3). 더욱이 자연인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저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은 둔하고 융통성이 없고, 부족하고 좁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되면 그리스도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깃털이 같은 새 끼리 모인다,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는 말이 그리스도인 관계에도 적용이 됩니다. 세상의 지위높은 불신자와 가지는 교제보다 신자와 가지는 교제를 더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한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본성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형제요 자매임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련을 맺은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서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는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성도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이 그 안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사랑하지 아니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고 거듭나서 천국을 향해 순례길을 가고 있으며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지낼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지식, 배경, 출신학교, 고향들을 묻지 아니합니다. 그것은 육신적인 기준입니다. 대신에 그리스도인은 단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이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인가? 우리는 출신이 어떠하든 배경이 어떠하든 한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같은 본향을 가지고 있으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세상에서 자랑하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다 한 형제요 자매로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순서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주 예수 안에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대한 사랑 순서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주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이 우선적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