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스토트

[스크랩] 복음주의의 위대한 유산 존 스토트 Ⅳ - 영혼을 살린 설교자 13

새벽지기1 2015. 9. 14. 22:07

 

복음주의의 위대한 유산 존 스토트 Ⅳ
영혼을 살린 설교자 13
출처: 교회와신앙
2009년 01월 12일 (월) 07:16:53 권영삼 032kwon@naver.com



 

존 스토트식 설교 준비
존 스토트는 설교 준비의 실제적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본문을 선택하라. 그에 따르면, 본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회력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이다. 이에 못지않게 회중들의 영적인 필요와 설교자 자신의 필요다. 이 가운데 교회력의 경우, 지나치게 교회력에 속박될 필요는 없지만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본문을 선택할 때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이런 방법은 자신이 경험했던 바다. 이로써 설교자는 청중들의 필요에 보다 더 민감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본문을 묵상하라. 존 스토트는 본문을 묵상할 때 항상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첫째는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다. 이는 본문이 기록될 당시, 무엇을 의미했나를 묵상하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 설교학에서 저자의 의도에 관심을 두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그의 ‘다리 놓기’ 설교 이론에 따르면, 성경 세계에 초점을 맞춘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그 본문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나?’에 대해 질문하라고 충고한다. 이 말은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염두에 두라는 뜻이다. 이를 일컬어 ‘다리 놓기’ 설교 이론에서는 현대 세계에 초점을 맞춘 질문이라고 한다.

존 스토트는 이런 질문들을 해결할 때 주석이나 원어사전, 성구사전을 적극적으로 살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 선에서 끝낼 것을 전제로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기도를 통해 부어지는 진리의 영을 통해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설교자는 설교 본문에 ‘반대 심문’(Cross-Examine)을 하고 본문은 설교자에게 역반대심문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묵상은 기도와 연구로 얻어진 것들을 모으는 과정이다.

‘지배적 사상’을 부각시키라
존 스토트는 성경을 묵상할 때 ‘본문의 지배적 사상’(Dominant Thought)을 찾아낼 것을 강조한다. 설교자는 묵상 중에서 그것이 명백해 질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모든 본문은 하나의 중심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중심 주제를 찾아내면 본문을 곡해하려는 의도를 저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져다준다.

존 스토트가 본문의 지배적 사상을 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설교는 강의가 아니라 한 가지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청중들이 설교의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중심사상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설교자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존 스토트의 이러한 주장은 강해설교의 거장 해돈 로빈슨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해돈 로빈슨은 본문의 지배적 사상을 ‘Big idea’로 표현했다.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존 스토트가 연구와 묵상이란 방법론에 치중한 반면 해돈 로빈슨은 주요소와 보충 요소의 연구에 초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지배적 사상’에 맞춰 자료를 배열하라
존 스토트는 ‘지배적 사상’을 효과적으로 보조할 수 있도록 보다 더 구체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에 따라 ‘지배적 사상’과 소극적인 내용을 과감하게 버릴 것을 충고한다. 그리고 ‘지배적 사상’을 적극적으로 잘 조명해 주고 강화할 수 있도록 구성과 어휘와 예화를 동원하라고 말한다.

스토트가 말하는 설교의 구성은 ‘필연적’이어야 한다. 그 구성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그가 말하는 가장 좋은 구성은 본문이 구조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자연스런 구성을 방해하는 인위적인 삼대지 구성을 절대 반대한다.

적절한 설교 시간은 얼마쯤일까? 존 스토트는 모든 설교는 설교자가 자신의 영혼을 전달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데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회중들이 설교를 그만두라고 할 정도라면 설교자는 심각하게 자신의 설교를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0분은 너무 짧고, 40분은 너무 길다는 입장을 취한다. 설령, 20분 보다 긴 설교라 할지라도, 모든 설교는 20분처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 스토트는 설교자가 어휘 선택에 집중적인 고민을 하라고 강조한다. 정확한 어휘 사용은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기 때문이다. 그가 강조하는 설교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단순할 것. 둘째, 명백할 것. 셋째, 장황한 말은 피할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가급적이면 설교 시 종속절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한다. 또한, 설교자의 어휘는 생생하게 자신의 마음을 그려낼 수 있는 언어이어야 한다. 생동감을 주는 어휘가 되려면, 과장과 최상급의 사용을 절제하고 거짓 없는 어휘를 쓸 것을 제안한다.

예화와 관련하여 존 스토트는 자신의 설교에서 예화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예화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처사는 아니다. 그는 예화가 별로 없는 것을 반성했다. 동시에 “예화는 집의 창문과 같다”는 스펄전의 말과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에 수많은 예화와 비유들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지나친 예화 사용으로 말미암은 ‘지배적 사상’이 흐트러지는 것과 잘못된 예화 사용으로 인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서론과 결론을 첨가시키라
존 스토트는 서론과 결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별히 설교문을 완성한 후 반드시 서론과 본론을 첨가할 것을 강조한다. 서론과 결론을 미리 결정할 경우, 본문의 의도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서론은 너무 길거나 짧지 않아야 한다. 훌륭한 서론은 청중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시킴으로써 청취 의욕을 왕성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제와 연결시켜 줌으로써 청중들은 편안하게 ‘지배적 사상’을 접하게 된다.

스토트에 따르면, 결론은 서론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결론은 단순히 반복적 개괄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좋은 결론은 내용의 반복을 넘어 개인적인 적용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가능하면 적용을 통해 드러낼 결론을 미리 말하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 이는 청중들이 그 다음 설교 진행에 흥미를 잃는 것을 방지해 준다. 존 스토트가 강조하는 좋은 결론은 청중들이 자신의 삶에서 말씀대로 살아가고 행동하도록, 그들의 사고와 의지에 촉구하는 것이다.

메시지를 위해 기도하라
설교자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설교 원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존 스토트는 원고 없는 즉흥 설교와 지나치게 원고에 의존하는 설교의 문제점을 동시에 지적한다. 즉흥설교는 정밀함이 결여되어 있어 본문의 의미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원고 설교는 즉흥성이 없어 청중과 눈을 맞대고 교감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가장 좋은 설교는 이 둘을 서로 조화하는 것이다. 스토트는 연구 중에는 설교 원고를 작성하지만, 강단에서는 읽지 않을 것은 권면한다. 설교자가 설교 전문을 암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존 스토트의 견해다. 대신, 설교 축약 노트를 가지고 강단에 서라고 권한다.

설교자의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기도는 설교 준비 전에, 준비 과정에서 그리고 준비 후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다. 스토트는 메시지가 설교자를 사로잡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것을 강조한다. 기도는 설교를 정리해주고 본문이 설교자의 가슴에 신선하게 살아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의 폭발적인 능력을 경험하게 해준다.

설교자와 인격
설교는 단순히 성경 내용을 전달하는 작업이 아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전 인격을 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존 스토트는 설교자에게 열정과 진실함, 유머 그리고 용기와 겸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설교자가 강단에서 진지하게 선포해야 하며, 강단 아래에서는 선포한 메시지에 대해 진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설교자의 인격과 직결된다. 스토트는 설교자의 열정을 논하면서 강단에서 눈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자의 열정은 때로 웃음으로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강단에서 설교자의 눈물이 있어야 하듯이 웃음도 필요함을 역설한다.

스토트는 단순히 인간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를 경계한다. 초대교회 사도와 같이 용기를 갖고 설교할 것을 주문한다. 더불어 상한 심령을 위로하는 균형 잡힌 부분도 간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설교자가 용기를 갖고 설교하는 것은 좋으나 이것이 지나치면 교만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지나친 용기는 자칫 만용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토트는 설교자는 무엇보다 겸손할 것을 충고한다. 그가 주장하는 설교자의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겸손이다. 그리스도의 영광 아래 무릎 꿇는 겸손이며 성령님께 의존하는 겸손이다.

이처럼 존 스토트의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정확한 해석에 기초하여 삶의 변화를 위한 적용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그의 설교론은 21세기에 말씀을 맡은 설교자들에게 대단히 모범적이며 도전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존 스토트의 선한 영향력이 조국 교회에 미쳐지기를 갈망한다.

출처 : 생명나무 쉼터
글쓴이 : 생명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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