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겨자씨칼럼 250

더 큰 것을 바라봄

더 큰 것을 바라봄 돈이 전부라는 사람은 돈으로 바꿀 수도, 살 수도 없는 영원한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존심만 강하다는 말은 자존심 외에는 붙들 게 없다는 말입니다. 복수가 지배하는 사람은 복수 아니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붙들고 있는 사람도 불행하지만 버려야 할 독을 붙들고 있는 사람은 더욱 불행합니다. 죽어도 구리반지가 최고라며 안 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금반지를 주면 구리반지를 뺍니다. 더 소중한 것, 크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 아픈 것들을 내려놓고 치유가 일어납니다. 신앙은 만유보다 크고 영원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돈이나 우리의 아픔보다 크다는 것을 체험할 때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게 됩니다. “믿음의 주요 또..

만남의 힘

만남의 힘 사람은 누구를 만나 동행하느냐에 따라 삶이 좌우됩니다. 자음은 모음을 만나야 글자가 되고, 작은 불꽃은 바람을 만나야 큰 불꽃이 됩니다. 칼이 어머니를 만나면 요리에 쓰이고, 도둑을 만나면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됩니다. 쓰레기가 백남준과 만나면 예술품이 되고, 길가의 바윗돌이 미켈란젤로를 만나면 다윗상(像)이 됩니다. 철이 철을 만나면 더욱 날카로워지지만, 철이 물을 만나면 녹이 습니다. 천하장사 삼손은 ‘작은 태양’이라는 의미입니다. 삼손이 델릴라를 만납니다. 델릴라는 ‘밤’이라는 뜻입니다. 태양의 복을 받은 그가 어둠을 만나 동행하니, 실제로 눈도 뽑히고 영혼도 어둠의 골짜기를 방황하게 됩니다. 좋은 만남, 그 만남을 볼 줄 아는 눈, 그 만남과 동행하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철이 철을 ..

파리를 따라가면

파리를 따라가면 무엇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됩니다. 파리를 따라가면 화장실로 가게 되고, 벌을 따라가면 꽃을 구경합니다. 도둑을 따라가면 담을 넘게 되고, 참스승을 따라가면 지혜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철학을 따라가면 물음표의 세계에 다다르고, 성경을 따라가면 진리의 세계에 이릅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면 겨우 내 수준으로 살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가면 하늘의 수준으로 살게 됩니다. 이방 여인 룻은 하나님을 선택해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면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이 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가 사람 낚는 전도자가 됐습니다. 마귀를 따라가면 마귀가 가는 지옥에 가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면 천국에 가게 됩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남의 떡

남의 떡 남의 것은 다 부러워 보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집 사과가 더 빨갛게 익은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도 남이 시킨 메뉴가 더 맛있어 보입니다. 또한 내가 있는 이곳은 현실, 저곳은 낭만이라 생각하고, 내가 걸어온 길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남도 내 떡이 커 보입니다. 그러니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의 돈 천냥이 내 돈 한 푼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남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사는 삶입니다. 달팽이는 빨리 달리는 노루를 부러워하지 않고, 행복한 컵라면은 짬뽕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는 자신의 역할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떡에 감사하고, 내 떡을 크게 생각하는 것..

무인도

무인도 갈매기와 조개, 나무와 꽃, 나비와 벌 등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는데 사람만 없다고 하여 ‘무(無)’자를 붙여 ‘무인도’라고 하는 것은 사람 중심의 사고입니다.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땅에 발을 디디면 ‘방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신대륙 발견’이라고 하면 강자 중심의 사고입니다. 단체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이 잘 나왔으면 잘 찍은 사진이고, 못 나왔으면 못 찍은 사진이라고 하면 자기중심의 사고입니다. 기도에 응답하면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고 불평한다면, 하나님을 고작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거인 종으로 여기는 인본주의 사고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도, 우리 방식대로 응답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

창문과 거울, 시계

창문과 거울, 시계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의 책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을 보면 카지노에 없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그것은 창문 거울 시계입니다. 카지노 측으로서는 당연한 조치일 것입니다. 창문을 열어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면, 거울 보면서 도박에 미친 자기 모습을 보면,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시계를 보면 “아! 약속 시간이지”라면서 카지노를 나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귀는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 파묻혀 주님의 비전을 잊어가도록 유혹합니다. 이때 성경은 창문과 거울, 시계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를 일깨워 줍니다. 성경은 성령의 바람을 통해 우릴 영적으로 깨어나게 하고 자신을 보게 하며 주님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모든..

지우개

지우개 과학 저술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지난 2000여년간 있었던 위대한 발명품에 대해 “인간의 실수를 수정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고무 지우개, 컴퓨터의 백스페이스(Backspace) 키, 수정용 화이트처럼 말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만약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면 과학은 물론 정부나 문화, 도덕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우개가 없었으면 우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우개 역할은 단순히 지우는 것이 아니라 연필에 더 기회를 줘 다시 쓰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우면서 실수와 실패, 상처와 미움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힘을 줍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능력으..

잊지않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강뉴(Kagnew)’로 불리는 황제의 근위병 6000여명을 한국에 파병했습니다. 강뉴 부대는 120여명 전사자와 530여명 부상자를 냈으나 포로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죽기를 다해 싸웠습니다. 이 부대의 어떤 병사들은 자신의 월급으로 부대 안에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차려서 전쟁고아들을 돌봤습니다. 그러나 귀국한 참전 군인들은 심한 고초를 겪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들은 역적으로 몰리며 코리안 빌리지로 쫓겨난 것입니다. 6·25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 됐습니다. 지금의 나, 지금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우리를 위해 희생한 이웃들의 섬김 때문에 존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껍질이 없으면 알맹이도 없습니다

껍질이 없으면 알맹이도 없습니다 수박 한 덩이가 1만5000원이라고 한다면 껍질은 1000원의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합니다. 알맹이가 주연이라면 껍질은 엑스트라 대우도 못 받습니다. 칭찬은 알맹이가 다 받고 껍질은 늘 찬밥 신세입니다. 그런데 사실 껍질이 없으면 알맹이도 없습니다. 껍질은 온갖 비바람과 벌레로부터 수박의 속을 지켜줬습니다. 알맹이에 단맛이 들도록 햇볕을 듬뿍 전해줬습니다. 칼을 제일 먼저 받는 것도 껍질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도 마음도 사랑도 모두 내어주고 빈 껍질처럼 달리셨습니다. 유충은 껍데기 속에서 보호받고 나비가 돼 날아오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토록 단물을 내는 알맹이가 된 것은, 껍질이 되어 우리를 보호해 준 예수님 부모님 친구..

바위도 좋고 흙도 좋으니

바위도 좋고 흙도 좋으니 바위는 단단하고 흙은 연약합니다. 바위가 좋다고 하는 것은, 코끼리는 코가 길어 귀족이고 돼지는 코가 짧아서 천하다고 하는 것은, 말은 빨리 달려 유용하고 달팽이는 느리기에 쓸모없다고 하는 것은, 엘리사는 많은 기적을 일으켰기에 유능한 선지자이고, 세례 요한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며 무능한 선지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흙은 생명을 키워내고 돼지는 고마운 고기를 제공하며 달팽이는 생태계의 환경미화원 역할을 합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기적보다 더 큰 진실의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께서 주신 각자의 사명을 갖고 이 땅에 보내진 존재입니다. 그 사명은 옳고 아름다우며 선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잣대로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없는 주님의 걸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