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본 하늘( 계시록4:1-11) 1장에서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큰 음성이 들려준 이야기는 일곱 교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들은 일곱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2-3장에 걸쳐서 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요한은 하늘을 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2
구원의 중요성과 구원 이해의 문제점(로마서8:19-23) 구원의 중요성 창조와 구원, 이 둘은 세상의 시작과 세상의 현실을 말해주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도 창조와 구원이고, 성경이 증언하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도 창조와 구원입니다. 창조와 구원은 삶의 모든 것, 역사의 모든 것, 하나님의 모든 것을 푸는 키..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1
일곱 교회에 하신 말씀(요한계시록3:21-22) 오늘은 계시록 2-3장을 마무리하면서 주님이 일곱 교회에 공히 하신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일곱 번을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11,17,29, 3:6,13,22)입니다. 들으라는 겁니..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1
신실한 교회(요한계시록3:7-13) 빌라델비아교회는 서머나교회와 함께 주님의 책망을 듣지 않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에는 아데미, 제우스, 아프로디테 등 여러 신의 신전이 있었고, 서머나교회처럼 빌라델비아교회도 유대인들의 공동체인 회당으로부터 완전히 추방되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1
살았으나 죽은 교회(요한계시록3:1-6)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입니다. 메시지 성경에서는 “원기 왕성한 것(being alive)으로 유명하다만, 그러나 실은 죽은 자다. 돌처럼 죽어 있다.”고 풀어 설명했습니다. 이 교회는 말 그대로 원기가 왕성하기로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무기력한 교회가 아니라 매우..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1
발람의 가르침을 따른 교회( 요한계시록2:12-17) 버가모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오늘 한국교회에 반면교사가 되는 교회입니다. 버가모는 매우 이교적인 도시였습니다.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성채 위에 가로가 약 37미터, 세로가 약 34미터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이 세워져 있을 만큼 여러 신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오늘 말씀..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1
미지근한 교회(요한계시록3:14-22) 일곱 교회 중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께 한 마디의 칭찬도 듣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좋아할만한 구석이라고는 거의 없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한 마디로 말해서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했습..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1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 요한계시록2:8-11) 요한계시록을 포함해서 모든 성경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 보낸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자들, 세상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으라고 보낸 편지입니다. 이건 뭘 말해줄까요? 성경의 모든 메시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나 인간으로서 지켜..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2.01
첫 사랑을 잃은 교회(요한계시록2:1-7) 요한계시록에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일곱 교회, 일곱 사자, 일곱 인, 일곱 뿔, 일곱 눈,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재앙 등 일곱과 관련된 숫자가 참 많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를 아우르는 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곱 교..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1.30
메시지와 메신저의 역설 이 세상과 삶은 신비와 모순, 역설로 가득합니다. 물론 나름대로 질서도 있고,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신비와 모순, 역설이 가득합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부부가 평생을 함.. 좋은 말씀/정병선목사 2015.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