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금환목사 3444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2:12)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용서받은 죄인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닮아가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천국시민다운 모습으로 자라가는 성화되어가는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성화되어가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말씀에 항상 복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네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만일 자신 안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착한 일을 이미 시작하셨다면(빌1:6), 만일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빌2..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시편119: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시편119:167) 시편119편은 시편19편과 함께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한 시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말씀, 주의 계명, 주의 법, 주의 법도,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주의 모든 계명, 주의 율례 등등 아주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여 칭송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 평안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장애물이 없게 하십니다(시119:16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많이많이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요한계시록2: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요한계시록2:24-25) 두어디라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두아디라교회에 대하여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라는 칭찬을 하신 후에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계2:20)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복음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온전히 받지 않은 교회로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이단이 영지주..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빌립보서2: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립보서2:30)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출신인 신실한 주님의 일꾼으로 바울은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그가 빌립보와 로마 감옥을 오가며 바울의 옥바라지도 하고, 또 빌립보교회가 헌금한 바울의 선교비도 공급해주고, 또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위로하고, 잘 세우기 위해 기록한 빌립보서를 가지고 빌립보교회에 가서 전달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마에 왔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빌2:27) 다시 건강하..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누가복음14: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누가복음14:34-35)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워한다고 할 수 있게 예수님 다음에 두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치러야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인데 그것이 비용일 수도 있고, 자기의 신분이나, 명예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의 모든 소유보다 예수님을 더 크게 여기고, 예수님이 원하시면 포기할 수도 있는 사람..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예레미야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예레미야32:27) 하나님은 모든 육체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입니다. 모든 우주만물의 주관자, 주권자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다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심을 충분히 나타내 보여주셨으며, 지금도 온 우주의 하나님으로 통치하십니다. 나라를 세우시기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믿음의 백성들을 징계 하시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들이라도 동원하셔서 사용하시기도 하시며, 또 믿음의 백성들을 도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들까지도 동원하셔서 사용하십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위선적인 서기관들(누가복음20:46-47)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20:46-47) 어떤 그룹이나, 모임에서도 유난히 참여도나, 기여도가 높고, 굉장히 모범적이고, 주도적이어서 목소리가 크고, 그 모임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만 그렇게 보였을 뿐 실제의 그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은 완전히 딴 사람인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서기관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실제의 자신의 내면은 그렇지 않으면서 유대인집단 안에서 인정받는 처세술에는 아주 능한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게 코..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역대하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역대하20:12) 여호사밧 왕 때 모압, 암몬, 마온의 연합군이 유다에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여호사밧과 유다의 백성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전국의 백성들을 모아놓고 회중들 앞에서 기도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쳐들어온 적들을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고, 오직 주 하나님만 바라보니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징벌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우리 앞에도 우리의 눈에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적, 그리고 눈에 보이는 무기를 들고 있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누가복음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누가복음3:16) 침례 요한이 침례를 받으러 나아온 많은 무리에게 침례도 베풀고, 회개의 메시지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의 백성들은 침례 요한이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 그리스도인가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자, 예수님의 등장을 소개하는 자답게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했습니다. 침례 요한은 자신은 단지 "물"로 침례를 베풀지만 곧 등장하시는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이제 곧 나오셔서 참 침례를 베푸..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언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언19:11) 분노조절 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노하게 하는 상황이 하루에도 몇번씩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를 발하는 것을 멈추거나,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슬기이고, 성숙이고, 그리스도인다움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분노를 꾹꾹 누르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정도의 자극까지는 분노하지 않고 견딜 수 있고, 또 지나친 자극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감정을 어떤 수위로 표출하는 것까지 조절이 가능한 것을 말할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그리고 우리가 죄 용서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용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