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금환목사 3444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시편105: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시편105:3-4) 어떤 사람은 자랑거리가 너무 많아서 자랑하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랑거리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랑거리가 있어도 자기의 자랑거리를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랑은 하지 말아야 하고, 자랑거리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거룩한 이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만으로도 최고의 자랑이시고, 또 자랑해야 합니다. 요즘 자신의 삶이 즐거우십니까 아니면 도무지 즐거움이라고는 없습니까? 이 말씀은 우리에게 즐거움의 비결을 알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마가복음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마가복음4:38) 예수님께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갈릴리 바다 서편에서 동편 지금의 요르단 땅인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는 중이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는 긴급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랑곳 하시지 않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깊은 어둠에서, 큰 광풍이 불고, 큰 파도에 휩싸여 무서워 떨며 괴로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던 밤에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 상관도 없으시다는 듯이, 완전히..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16:24) 예수님은 바로 앞에 다가온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죽음 후에는 부활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셔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길을 열어주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여 응답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성령님이 자신 안에 거하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도,..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립보서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립보서4:5) 관용에 담긴 의미는 죄인에 대하여는 용서하고, 실수에 대하여 너그럽고, 다른 의견에 대하여는 수용적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의 마음을 품는 것, 관용으로 대하는 것, 관용을 베푸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것일뿐만 아니라, 관용하는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관용하라고 명령하고,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그리스도인이라도 오히려 관용하고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진짜 관용은 사람 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히6:12)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브리서6:11-12) 히브리서 기자는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면서 마치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을 말하듯이 권면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히6:10)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직접 수신하는 성도들과 지금 히브리서를 읽는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으로,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고,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디모데후서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디모데후서1:5) 디모데의 믿음이 디모데의 외할머니의 믿음과 어머니의 믿음과 같은 믿음이며,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당신은 자녀들에게, 손자손녀에게, 그리고 가족 중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 믿음의 유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지고, "거짓 없는 믿음"으로 양육하고, "거짓 없는 믿음"을 심어주어야겠습니다. 믿음이 도둑 맞지 않도록 잘 지켜야겠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믿음을 훔치려고 사탄의 공격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진화론으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물질주의로, 진학과 취..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에스겔20:9)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에스겔20:9)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을까요? 그때,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으나(겔20:7),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들의 눈을 끌고 관심을 끄는 가증한 우상을 버리지 않고, 우상들을 따나지 못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진노하셨습니다(겔20: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호세아9:5)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호세아9:5) 추석명절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절과 절기에 이렇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호9:5) 그런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호9:4) 추석이라는 명절을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로 드리십시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함께 헤아려보며 찬송을 올려드리는 날로 드리십시오. 명절연휴에 무엇..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에스겔43:8-9)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에스겔43:8-9)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이 한 강대국이, 한 약소국을 침략해서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방과 문설주를 우상을 섬기는 전의 문지방과 문설주를 겨우 한 담을 사이에 두고 그 담을 넘어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의 전을 왔다갔다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다가, 우상의 이름을 부르다가 했던 것을 "내 ..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3:12)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가진 신앙관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만났고, 성령으로 거듭났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면서도 부단히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어떤 그리스도인보다 온전하고, 정말 자신의 전 생애를 드려 거의 완전에 가까운 헌신을 하고 있었고, 너무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지금까지 한 것을 업적으로 자랑하지 않고, 오직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종으로 살 것인가만 생각하고, 장차 하나님의 품에 안겨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푯대를 향하여,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