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언19:11)
분노조절 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노하게 하는 상황이 하루에도 몇번씩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를 발하는 것을 멈추거나,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슬기이고, 성숙이고, 그리스도인다움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분노를 꾹꾹 누르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정도의 자극까지는 분노하지 않고 견딜 수 있고, 또 지나친 자극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감정을 어떤 수위로 표출하는 것까지 조절이 가능한 것을 말할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그리고 우리가 죄 용서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용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는 몹시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 자체에 모순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에 용서는 자신이 "일만 달란트의 탕감을 받은 종"으로서 "일백 달란트의 빚진 동료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마18:21-35).
오늘은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면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정복하는 것 만큼 몹시 어려운 노하는 것을 조절해 보는 날, 지금까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하기를 시도해보는 날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가길 소망하는 이금환드림
'좋은 말씀 > 이금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역대하20:12) (0) | 2023.09.06 |
---|---|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누가복음3:16) (0) | 2023.09.05 |
"이날은 주님의 날, 이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에스라10:7) (0) | 2023.09.04 |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시편32:9) (0) | 2023.09.02 |
"내가 기도하노라..."(빌립보서1:9-11) (0) | 2023.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