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묵상의 계속이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 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삶과 신앙을 일치시켜서 산다는 뜻이다.
물론 세속사회에서 실제 수도승처럼 살 수는 없다.
돈도 벌어야 하고 명예도 얻어야 하니
세상살이를 교회생활처럼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아니 중요하기 때문에라도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글에서 짚은 거지만,
독일 히틀러 시대에 두 종류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한쪽은 정치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는 입장의 사람들로서,
그들은 히틀러 정치에 대해서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이들 입장도 터무니없는 거는 아니다.
교회가 세속 정치에 대해서 일일이 시비를 걸 수는 없다.
기독교는 잔소리꾼이 아니다.
그러나 악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정의를 외면하는 게 옳은 것은 아니다.
다른 한쪽에는 히틀러를 거짓 메시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투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대표하는 신학자가 노선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 같은 입장에서 섰다고 볼 수 있는 바르트와 본회퍼다.
본회퍼는 기독교 신앙을 삶의 변두리가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건 그의 윤리학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 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본다는 뜻이다.
돈벌이, 자식 키우기, 가정교육, 이웃관계 등등,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이 중심 주제가 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방향만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통치를 탈(脫)역사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 중심에서 받아들어야 한다.
신학은 이런 방향 설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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