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적극적인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강요받는다.
일상이 그런 가치에 포위당했다.
뭔가 역동적인 것 같지만 안식이 없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니 앞만 바라보고 달린다.
한국교회는 소위 ‘긍정의 힘’ 류에 세뇌당한지 오래다.
목사와 회중들은 믿음으로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린다.
그렇게 달려봤자 안식이 없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니 앞만 바라보고 달린다.
세상이 달릴 때 옆에서 제동을 걸어야 할 교회가 앞서서 달리는 형국이다.
현대 문명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간섭으로 발전되었다.
그걸 사람들은 과학의 발전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배아 복제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꿈꾸게 되었다.
인류는 끝없이 그 길을 적극적으로 갈 것이다.
스스로 신이 될 때까지.
신이 될 수도 없으려니와 신이 된 것처럼 착각할 때가 되면
인간은 신으로부터 훨씬 더 비참하게 버림을 받을 것이다.
깊은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겠는가.
아니, 그때가 오기 전이 지금 이미
그런 허무의 그림자가 우리를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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