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10. 6. 07:12

“땅을 정복하라”는 구체적인 성서 표상은 신학의 진통이 수백 년 동안 땅의 통치(dominum terrae)로서 가르쳐 온 지배의 명령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음식물에 대한 명령이다. 즉 인간은 동물들과 함께 땅의 식물들과 나무들이 생산하는 열매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지배권의 의미는 없다. 지배에 대한 명령은 창세기 1:26절에서만 발견된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여기서 지배는 창조자요 세계의 유지자 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이 상응하는 일과 결부되어 있으며, 이 상응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과 동물은 땅이 생산하는 열매들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평화의 지배를 뜻할 뿐이며 삶과 죽음에 대한 권한을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기능은 평화의 심판자의 기능이다.(46쪽)

 

     신학과 신앙은 기본적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데서 시작하오. 이 말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이 역사 초월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이오. 한국교회 신자들의 특징은 이 역사성을 무시한다는 것이오. 예수와의 만남, 예수 영접, 기도 응답이 가장 확실한 신앙의 근거인 것처럼 말하오. 매우 주관적이고, 초월적인 성격이 강하오. 자기 확신에 차 있소. 그래서 신학공부도 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역사를 공부하지도 않소. 그냥 믿음의 확신만 있으면 그만이오. 그것처럼 어리석은 신앙도 없소. 지난 과거의 과학 연구를 공부하지 않고는 과학자가 될 수 없듯이 지난 과거의 신학을 공부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소. 그리스도 신앙은 역사적으로 주어진다는 말이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을 이렇게 거론한 이유는 “땅을 정복하라.”는 성경 구절을 왜곡한 역사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소. 몰트만이 설명한 것처럼 사람은 세상을 정복할 자격도 없고 그런 능력도 없소.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봉사할 뿐이오. 이 문제는 앞에서 한번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더 길게 말하지 않겠소. 세상을 너무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오. 인간은 손님일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