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셨다고 전하오. 태초라고 한다면 아직 사물이 있기도 전이고, 따라서 사물의 이름이 있기도 전인데 ‘빛’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거요? 성서기자가 그런 문제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요. 하나님이 빛을 존재하게 하셨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소. 하나님은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뜻이오. 이 말을 이해하시겠소?
하나님이 누구냐 하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소.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오. 나로서는 그런 확신이 부러울 따름이오. 그들의 하나님 표상은 거의 신인동성동형론에 머물러 있소. 슈퍼맨 정도의 모습이오. 흰 수염이 난 도사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또는 헬라의 요염한 여신의 형상일 수도 있소. 구약에는 우상이 자주 등장하오. 왜 그런지 아시오? 그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 때문이오. 여호와 하나님은 막연하지만 우상은 구체적이고 실증적이오. 아마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그런 우상의 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소.
하나님은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말을 다시 새겨보시오. 이는 곧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또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오. 그대가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대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소.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대를 존재하게 했고, 존재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오. 걱정을 하는 이유는 그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것에 있소. 더 건강하고, 더 부자가 되고, 더 오래 사는 방식의 생명 말이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한 삶의 한 형태에 불과하오. 생명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대는 알 것이오. 왜 그대가 지금 경험한 것만을, 또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것만을 최선이라고 확신하시오?
그대의 경험을 축소시키고 성서의 가르침에 영혼의 문을 더 열어보시오. 빛이 있으라 하신 분이 누군가를, 또는 어떤 능력인가를 선입관 없이 받아들이라는 말이오. 지금 우리 앞에는 빛이 없는 게 아니라 있소. 그걸 가능하게 한 능력이 바로 하나님이오. 진화론에 대해서 겁낼 것이 없소. 그 진화의 능력으로 존재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니 말이오. 창세기 기자는 놀라운 발언을 한 거요. “빛이 있으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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