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빛이 있었고...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28. 06:46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하오. ‘있다’는 말에 마음을 두시오.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거요. 없던 것이 있게 된다는 건 보통 사건이 아니오. 없을 수도 있었지만 있게 되었소. 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소. 제로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소. 그것이 창조 사건이오.

 

     지금 우리는 ‘있는 것’을 너무 익숙하게 바라보고 있소. 태양이 뜨면 빛이 당연히 비춘다고 생각하오. 이미 이렇게 된 세상에서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오. 그런데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보시오. 태양이 왜 빛을 낸단 말이오. 빛이 없을 수도 있었을 텐데 빛을 내게 되었소. 빛을 내지 않는 태양은 세상에 없소. 행성은 빛을 내지 않소. 행성은 태양, 즉 별이 아니오. 모든 별은 빛을 내오. 그래도 우리는 질문해야 하오. 왜 별은 빛을 내야만 한단 말이오.

 

     그런데 창세기의 진술에서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이 하늘의 광명체들을 만들기 전에 먼저 빛을 창조했다는 내용이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물리적 지식을 완전히 넘어서는 진술이오. 우리는 위에서 말한 대로 별로부터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그러니 빛이 있기 전에 별이 먼저 있어야만 하오. 그런데 성서는 그것을 거꾸로 보고 있소. 왜 그렇게 보는 거요? 우리보다 물리학적 정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오? 그렇지 않소. 태양이 빛을 낸다는 것은 물리학을 거론할 것도 없이 그냥 우리 앞에 드러나는 사실이오. 성서기자가 그것을 몰라서 빛을 모든 존재하는 것들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라고 말한 건 아니오. 태양과 빛을 떼어 놓고 본 것이오? 그건 논리적으로 모순이오.

 

     고대인들에게 빛은 특별한 의미가 있소. 고대인들만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요. 태양이 없어도 우리는 지상의 불을 통해서 빛을 경험하오. 태양으로부터도 나오지만 장작불로부터도, 번개로부터도 빛은 나오오. 반딧불에게서도 빛은 나오오. 이런 빛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내가 모르겠소. 어쨌든지 빛은 태양, 장작불, 번개, 반딧불이라는 개체보다 더 본질적인 어떤 것이라는 말이 되오. 이는 마치 많은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가 어떤 한 성악가의 소유가 아니라 더 근원의 어떤 세계에 속해있다는 말과도 비슷하오. 그렇소. 빛은 보편적인 생명의 토대요. 태양에 한정되는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생명의 능력이오. 그래서 창세기 기자는 그 무엇이 있기도 전에 빛이 있었다고 말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