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기자는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쓰오. 이걸 하나님께 누가 물어본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을 골라서 그걸 알린 것도 아니오. 이 진술은 어디서 온 거요? 이에 관해서 지금 설명하지 않겠소. 이미 이와 비슷한 문제를 앞에서 잠간 말한 적도 있고,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설명했소.
빛이 좋았다는 말은 물론 문학적인 수사요. 빛이 좋고 나쁘고는 없소. 어둠을 몰아내고 식물을 자라게 하니까 좋다고 말할 수 있긴 하오. 그렇지만 빛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오. 빛의 많은 부분은 우리에게 치명적이오. 다행히 지구에는 오존층이 있어서 치명적인 빛은 거기서 다 걸러지오. 내가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원래 별들이 내는 빛은 핵반응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오. 태양도 그 안에서 핵반응을 일으키오. 그러니 생명체에게 좋을 게 어디 있겠소. 세상의 이치가 대개 그렇소. 무조건 좋은 건 없소. 산소도 그렇소. 우리가 산소를 호흡하면서 생명을 유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산소를 호흡하기 때문에 몸이 늙는 것이오. 우리 몸이 산소를 태우면서 생명의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생명을 갉아먹기도 하는 거요. 빛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오. 빛이 좋았다는 표현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오.
구약성서 시대의 사람들이 빛이 좋다고 생각한 이유는 분명하오. 그들은 세상을 빛으로 인식한 거요. 그대는 새벽이 밝아오는 순간을 본 경험이 있소? 동해에 가서든, 지리산에 올라가서든 일출을 경험해보시오. 장관이오. 그렇게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대가 사는 곳에서 새벽을 맞아보시오. 빛으로 세상이 가득하게 되는 그 장면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될 거요. 하늘로부터 땅까지, 동에서 서까지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오.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몽둥이로 쫓아낼 수도 없는 막강한 힘이 빛이오. 그 빛이 밤하늘에서는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뭐겠소? 오늘 거기까지는 나가지 않겠소.
고대 종교는 거의 빛을 신으로, 또는 신 현현 경험으로 묘사하오. 그리스도교도 비슷하오. 요일 1:5절은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했소. 빛은 신을 가리키는 메타포인 거요. 그러니 빛이 좋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소.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과 어둠 / 정용섭목사 (0) | 2024.09.29 |
---|---|
원당일기(20) 정용섭목사 (0) | 2024.09.28 |
빛이 있었고... / 정용섭목사 (0) | 2024.09.28 |
평창올림픽 유감 / 정용섭목사 (9) | 2024.09.27 |
빛이 있으라 하시니 / 정용섭목사 (1) | 2024.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