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4b절은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라고 하오.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누는 건 당연한 일이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나뉘오. 엄격하게 말하면 어둠은 없소. 빛은 존재하지만 어둠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오. 빛이 없는 상태가 바로 어둠이오. 빛의 비존재가 어둠이오. 따라서 어둠은 허무라고 보는 게 옳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은 밤 10시 반이오. 어둠의 시간이오. 내 방에는 형광등 빛과 컴퓨터 모니터 빛이 있어서 어둠을 느낄 수 없소. 아파트 아래 길거리에도 가로등 빛으로 그렇게 어둡지 않소. 멀리 산과 하늘은 어둡소. 아파트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면 달빛이 비출 것이오. 저녁 8시 경에 보니 산 위에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었소. 그러고 보이 오늘이 음력으로 6월 보름이구료. 그것도 모르고 오늘 나는 달을 보고 참 밝은 달이네, 했소. 지금이라도 달구경을 나가보시오. 장마 끝 무렵의 달구경은 운치가 있을 거요.
우리는 살아 있을 때 빛을 경험하오. 눈으로 빛을 느끼오. 그리고 내 몸도 빛을 받아들이고 있소. 죽으면 어둠이오. 빛과 완전히 단절되오. 그대는 죽으면 그대로 땅에 묻히고 싶소, 아니면 수목장을 하고 싶소. 의학대학교에 시신을 기증하는 방법도 있소. 어떤 선택을 하든지 크게 차이는 없을 거요. 우리 몸은 빛과 완전히 단절되고 어둠으로 들어가오. 그 뒤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오?
설교 조로 한 마디 하겠소. 살아 있으면서도 어둠에 속한 사람들이 있소. 무슨 뜻인지 그대는 벌써 감을 잡았을 거요. 살았으면서도 죽었다는 뜻이오. 몸으로만 살아있을 뿐이지 생명의 주인이신 분과 단절되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오. 이런 말을 상투적으로 듣지 마시오.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해보시오. 그것으로 생명이 완성되는 게 아니오.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프고, 외롭고, 허무하오. 그러니 생물학적인 차원의 생명만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증할 수 없소. 그런 생명은 시간과 더불어서 다 지나가게 되어 있고, 낡고, 썩게 되어 있소. 거기에 매달릴수록 좌절이 더 클 뿐이오. 어둠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소. 빛과의 일치요. 그 빛을 하나님이라고 하오. 물리적인 빛과 하나님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빛을 겸해서 생각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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