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6절부터의 설명이 조금 이상하오. 하나님이 물과 물을 나누고 그 중간을 궁창으로 만드셨다 하오. 궁창이 하늘이라면 하늘 위에 물이 있다는 뜻이오. 이게 말이 되오? 고대인들의 신화적인 우주이해를 따른 것이니 그렇게 이해하시오. 일단 아래의 물은 말이 되오. 바다와 그 깊이를 다 모르는 고대인들이 세상의 아래가 물로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오. 궁창 위의 물은 훨씬 극단적인 상상력이 필요하오. 고대인들은 비가 어떻게 내리는지 잘 몰랐소. 하늘 너머에도 바다와 같은 물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소. 노아홍수 이야기에도 하늘의 문이 열려 물이 쏟아졌다는 말이 있소.
창세기의 설명에 따르면 궁창이 있기 전에는 세상이 온통 물로 되어 있다는 말이 되오. 그뿐만 아니라 창조 이전에 물이 존재했다는 말도 되오. 사실 창조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허점이 많이 보이오. 그것은 사실 보도가 아니라서 그렇소. 아무도 창조 사건을 본 사람도 없소. 그것은 유대인들의 세계관이오. 위 구절이 말하려는 것은 물이 창조된 게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창조하셨다는 말이오. 물론 물도 그때 창조된 것이오. 혼돈으로부터 세상이 질서를 잡아간다고 말이오.
창조 둘째 날의 핵심은 물이오. 첫째 날은 빛이었소. 빛이 모든 사물의 존재론적 근거라는 차원에서 첫 창조가 빛이라는 말은 옳고, 물이 생명의 핵심이라는 차원에서 두 번째 창조가 물이라는 말도 옳소.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본질이라고 말한 것처럼 물은 고대인들에게 생명을 이해하는 근본 토대였소. 지금도 마찬가지요. 그것에 대해서는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더 말하지 않겠소.
내가 짚고 싶은 것은 사물에 대한 고대인들의 통찰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오. 그들은 물과 흙과 공기와 불을 직면하면서 살았소. 현대인들은 그런 자연의 본질들을 외면하오. 자연이 인간에 의해서 소외당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자연에 의해서 소외당한다고 보는 게 옳소. 이제는 가상공간을 현실로 생각할 정도가 되었소. 이건 착각이오. 착각이 반복되면 결국 삶이 왜곡될 수밖에 없소. 태초에 물이 세상에 가득했다는 창세기의 진술은 영적으로 정확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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